제1장 낯 익히기
○ 수필의 전제
- 수필은 붓 가는데로 쓰는 글이 아니다.
달관된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 된 사람이 자기의 생각을 편안하게 풀어낼 때,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쓴 것처럼 보일 것이라는 말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 수필은 그 형식이 매우 다양한 글이다.
- 수필은 신변잡기가 아니다. 수필은 우리 삶을 의미화 하는 문학이다.
의미화하지 않은 삶은 반복되는 일상의 하나일 뿐이다.
생활의 의미화, 그것이 곧 수필이고, 수필이 곧 삶의 철학이 되는 것이다.
- 수필은 시도 아니요, 소설도 아니다. 수필은 산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문예적인 산문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시적인 이미지와 소설적인 이야기와 희곡적인 대화를 모두 수용한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넘쳐서는 안된다.
- 수필은 재미를 추구하는 글이 아니다. 재미로만 따진다면 수필은 소설을 따를 수가 없다. 수필의 재미는 결코 원색적이거나 말초적이지 않다. 그것이 바로 수필이 갖는 고유한 품격이다. 향기가 있되 진하지 않고, 소리가 있되 요란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이 있되 천박하지 않은 글, 이것이 바로 수필이다.
○ 수필의 본질
- 사실의 체험 :
수필의 소재는 바로 현실세계에서 작자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 체험이다.
체험에는 직접체험과 간접체험이 있다., 간접체험에는 상상도 포함된다. 그러나 수필에서는 그 상상이 상상임이 밝혀져야만 한다. 문학은 진실을 캐내는 작업이다. 소설은 허구를 통해서 캐내지만 수필은 실제 삶에서 진실을 캐낸다. 삶이 없으면 수필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수필은 매우 실존적인 문학이다.
- 1인칭 문학 :
소설은 작가가 내세운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3인칭 문학이다.
그러나 수필은 자신이 독자와 직접 대화하는 1인칭 문학이다.
○ 수필의 성격
- 개인수필 :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진솔하게 풀어나가는 고백적인 글이다.
- 비평수필 :
개인수필이 자신을 조용히 관조하는 글이라면, 비평수필은 공동의 선을 위해 시비나 선악을 가리는 글이다. 비평수필이 문예성을 가지려면 비평 조차 수필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수필적’이라함은 직설적이기보다는 은유적이어야 하고, 공격적이기보다는 느낌의 여운으로써 비평의 날카로움을 가려야 한다는 뜻이다. (김소운의 ‘두레박’)
- 사회수필 :
글속에 시사성을 담는 수필을 말한다. 시사성은 어디까지나 문예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문예성이 약하면 사회비평적인 칼럼이 되고 만다. (김영만의 ‘로열 박스’)
○ 수필의 종류
- 수필을 크게 나누면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눈다
- 경수필은 작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성격이 있고, 중수필은 작저의 체험을 배제한 객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 경수필 : 서정수필, 서사수필, 서간수필, 기행수필, 철학수필이 있다.
* 서정수필 : 개인적 신변에서 정서를 추출해내는 수필로서 문장은 부드럽고 표현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표현이란 치장에 치중하는 미문이 아니라, 작자의 신선한 의식에서 찾아낸 독창적 표현이다. 서정수필에서 시적인 상징과 비유도 빌려 쓰나 지나치면 산문에서 멀어진다.(유경환의 ‘꽃신‘)
* 서사수필 : 사실(사건)에 충실한 글이다. 서정수필과 철학수필이 느낌과 사상을 중심으로 한다면 서사수필은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그렇다고 사실기록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서사에 정서가 따라야만 수필이 될 수 있다.(윤형두 ‘콩과 액운’)
* 서간수필 : 편지형식을 빌려 쓰는 수필이다. 편지가 곧 서간수필이 될 수는 없다. 개인 간의 사신이라도 보편적인 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는 편지라면 서간수필이 될 수 있다. (반숙자, ‘등나무 형님’)
* 기행수필 : 기행문과 기행수필은 다르다. 세세한 일정, 친절한 길안내, 안내 책자에 살 붙인 것 같은 관광지 소개, 백과사전에 있는 지식의 나열은 기행수필이 될 수 없다. 기행문의 3요소는 체험, 감상, 여정이다. 체험과 여정만 있으면 기행 수필이 될 수 없다. 여행지에서 자기만이 느낀 감상을 주제로 끌어내야 한다. 기행수필은 지식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송규호의 ‘삼도내의 돌탑’)
* 철학수필 : 서정수필이 主情수필이라면, 철학수필은 主知수필이다. 감성보다는 지성이 主가 되는 수필이고, 정서의 아름다움을 탐닉하기 보다 주제의 철학성을 중시하는 수필이다. 서정수필이 정서의 아름다움에 비중을 두는 섬세한 글이라면, 철학수필은 사유의 깊이에 더 비중을 두는 무게 있는 글이다.(고봉진의 ‘마침표’)
- 중수필 : 경수필이 작자의 신변적 체험에서 소재를 찾는 가벼운 수필이라면, 중수필은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문제에서 소재를 찾는 무거운 수필이다. 그러므로 경수필이 주관적 이라면 중수필은 객관적이다. 중수필에는 작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작자의 철학과 사상만 드 러날 뿐이다.(김시헌의 ‘연애’)
○ 수필의 상상
- 수필의 상상은 허구가 아니다.(김영만의 ‘와석삼제)
病을 손님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병과 화해하는 과정을 매우 특이하고 신선한 수법으로 처리한 상상의 글이다. (윤혜숙의 ‘노을 지는 강’ - 단종의 아픔을 상상으로 처리)
제2장 표현하기
○ 수필의 언어
- 수필은 자기 고백적 문학으로써 언어의 선택은 자연히 소설보다 신중을 기하게 된다. 소설은 허구이기 때문에 작중인물의 설정에 따라 언어가 선택된다. 즉, 인물의 학력, 출신, 교양, 직업 등에 따라 자유로운 언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수필에서 언어는 곧 작자의 품격과 상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인용문이 아닌 한 비속어를 사용해서는 않된다. 지문에서는 방언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방언은 지역방언과 사회방언이 있다.
(양반계급과 상민계급의 말, 농민과 어민의 말, 기술계통의 용어 등)
○ 수필의 문장
- 간결해야 한다.
- 소박해야 한다.
소박하다는 것은 아름답기 위해 일부러 꾸미지 않는 것을 뜻한다.
- 평이해야 한다. 일부러 어렵고 현학적인 말을 과시하거나 잘 쓰지 않는 古語를 찾아 쓰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 文章三易 = 보기 쉽고, 알기 쉽고, 읽기 쉬운 문장
- 글을 어렵게 쓰는 필자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문장수련이 덜 된 사람이다. 그도 아니라면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인 양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 수필의 美文
- 수필에서 가장 경계해야 랄 것은 바로 미문이다.
미문이란 미사여구로 쓰여진 문장을 말한다. 그것이 지나치면 진실이 가려 지고 희석되어 버린다. 너무 꾸민 인상을 주지 않도록 퇴고에서 걷어내야 한다. 지나친 기교는 문장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지나친 수식은 문장의 미숙을 나타낸다.
○ 수필의 표현
- 비유법 :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이 있다.
※ 박목월은 문장에서 비유는 독약과 같다고 했다. 분량이 지나치면 문장을 그르치고 비속해지며, 반대로 인색하면 구체성과 문장의 맛을 잃는다는 뜻이다.
* 직유법 - ~처럼, ~같이
* 은유법 - ~처럼, ~같이 같은 매개체가 없이 느낌을 돌려 간접적으로 표현
* 의인법 - 사물을 사람으로 비유
- 강조법 : 열거법, 과장법, 영탄법이 있다.
* 수필에서는 감정을 여과시켜야 하므로 영탄법을 잘 쓰지 않는다. 꼭 자신의 기쁨 환희 등의 감정을 여과없이 전달해야 할 때만 쓴다.
- 변화법 : 설의법, 인용법, 반어법이 있다.
* 수필은 거의 지문으로 풀어나가는 글로써 단조롭기 쉬운데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법이 변화법이다.
* 설의법 - 독자에게 의문을 던짐으로 주의를 끌어오는 효과
* 인용법 - 자신의 생각을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글이나 명구, 잠언, 속담을 빌려 쓴다.
* 반어법 - 본래의 뜻과 반대되는 뜻으로 써서 숨은 뜻을 강조하는 표현 으로 독자도 작자와 함께 그 풍자의 맛을 즐기게 하는 매력이 있다.(김진악의 ‘어떤 선생님’)
○ 수필의 감정
- 미움, 슬품, 기쁨같은 감정을 원색적으로 드러내지 말라
- 소설이라면 실감나게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수필은 작자인 나의 시각에서 글을 쓰므로 작자의 인격이 전적으로 직접적으로 글 속에 노출되는 언어의 선택과 더불어 감정처리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 수필문장에서는 미움, 증오, 분노, 슬픔, 기쁨 같은 감정이 원색적으로 드러나면 품위를 잃는다. 퍼져 앉아 대성통곡하는 모습은 속이 시원해서 좋지만 눈물 한 방울이 눈가를 적시며 슬픔을 참는 모습에는 절제의 아 름다움이 있다.
- 외롭고 슬프고 고독할수록 ‘외로움’, ‘슬픔’, ‘고독’이라는 말을 삼가야 한다. 원색적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편에 슬픔과 고독이 절절하게 배어 나오도록 쓰는 것이 뛰어난 묘사법이다.
- 수필에서의 절제는 생명과도 같아. 수필은 절제를 통하여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품위 있는 글이 된다.
○ 수필의 소재
- 소재는 다양하다, 다만 같은 소재라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 평범한 것 보다 남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글감으로 삼아야 가치가 있다. (정목일의 ‘아름다운 간격’, 서정숙의 ‘풍경과 바람’)
제3장 마무리하기
○ 수필의 서두
- “느낌의 현재”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
- 느낌의 현재란 그 글을 쓰고자 한 동기, 바로 그 정서의 시발점을 말한다.
(예) 오늘로 어머니 가신 지 일주일이다.(반숙자의 ‘외롭게 한 죄’)
자정이 지난 것 같다(이종만의 ‘아우성’)
선홍색 피가 주르르 복부를 타고 흐른다.(한향순의 ‘사혈’)
너무도 무상하다.(한인애의 ‘그리움’)
처음보는 엄청난 황토물이다(강길수의 ‘태풍’)
○ 수필의 구성
- 직렬구성, 병렬구성, 연역적 구성, 귀납적 구성
○ 수필의 문단
- 문단구성이 안되면, 생각은 꿰지 않은 구슬과 같다.
○ 수필의 결미 : 생각의 여운을 미진처럼 남겨두라.
- 김수봉의 ‘이별연습’, 백임현의 ‘아름다운 강북’, 유선진의 ‘네 이웃이 눈에 보일 때’
- 유동림의 ‘씨앗 2’, 황태섭의 ‘석별’, 서길원의 ‘잃어버린 것은’,
- 김한석의 ‘인력거’
○ 수필의 제목
- 주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짧게 붙이는 것이 좋다.
○ 수필의 퇴고 : 문장에서 일필휘지란 없다
- 형용사나 부사를 너무 써서 가볍지 않은가?
- 이 단어는 꼭 맞는가?
- 문장은 문법(맞춤법)에 맞게 쓰였는가?
- 표준어인가?
- 비속어가 아닌가?
- 이 말이 꼭 필요한가?
- 외국어식 표현은 아닌가?
- 없는 말을 만들어 쓴 것은 아닌가?
- 더 줄이면 이해가 않되는가?
-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않되는가?
- 문단은 제대로 구성했나?
- 글의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지지 않았나?
- 구성과 시제에 혼란은 없나?
- 문맥의 흐름에 끈김이 없나?
- 복합문이 계속되어 호흡이 길어지지 않나?
- 붙여써야 할 문장을 짧게 끊어서 흐름이 막히지 않았나?
- ‘그런데’, ‘그러나’, ‘그래서’와 같은 접속사를 남용하지 않았는가?
- 외국어처럼‘ 나는’이라는 말이 많지 않나?
- 문장부호와 띄어쓰기는 제대로 되었나?
부록 : 글쓰기의 기초
○ 글쓰기와 친해지기
- 덮어 놓고 그냥 써 보라.
○ 문장의 실제 :
‘ 문장이 안된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 주어와 서술어 사이는 너무 멀지 않아야 한다.
- 수식어는 수식되는 말 가까이에 놓아야 한다.
- 중복되는 말을 피하라.
- 겹말을 피하라.
- 피동형으로 만들지 마라.
좋은 수필을 논하기 위해서는 문장에 대한 언급이 빠질 수 없다. 수필은 비교적 짧은 산문이기 때문에 문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치 소설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수필가 개인이 갖고 있는 혹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바로 수필이다. 2013년 신춘문예 당선 수필을 읽어보며 좋은 수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각 수필이 갖고 있는 고유의 특성과 문장을 중심으로 몇 개의 당선작을 살펴보고자 한다.
윙-, 윙-, 윙-, 삐---. 한줄 소리가 바늘처럼 뇌리를 뚫고 지나간다. 누군가가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대며 이 밤을 지새울 작정인가 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소리를 피해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옮긴다.
첫 문장부터 청각적인 이미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이 수필의 제목은 「이명耳鳴」으로 작가 개인이 직접 겪었던 증상을 글로 서술한 것이다. 소리가 귀 안을 가득 메우는 과정을 작가는 감각적인 문장을 사용해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바늘처럼 뇌리를 뚫고 지나간다.’는 표현은 다소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뒤에 이어지는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대는 누군가’를 상상해내면서 작가는 신선한 표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감각적인 비유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
숲이다. 생명이 움트기 위해 잠시 웅크리고 있는 시간은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둡다. 고요하다. 먼지하나 일어나지 않는 숲의 적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길 위로 천천히 발을 옮겨 놓는다. 풀들이 몸에 부딪힌다. 조용하면 더 뚜렷해지는 소리일까. 스윽-, 신경을 곤두세운 소리들이 나를 올려다본다. 지금 나는 불청객처럼 흘러들어 숲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 찌르르-, 찌르레기가 울고, 매앰 맴-, 끼르끼르-, 매미, 귀뚜라미가 사방에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둘러보아도 그들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귀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소리들은 마지막 문장과 같이 형체가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글 속에서 소리는 부딪히는 풀, 고요를 깨뜨리는 찌르레기, 매미, 귀뚜라미로 형상화 되고 있다.
[출처] 수필의 재발견 / 이정림|작성자 장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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