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스티븐은 봄에 내게 입맞춤을 했다
로빈은 가을에 입맞춤을 했다
그러나 콜린은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한번도 입맞춤을 하지 않았다
스티븐의 입맞춤은 희롱 속에 떠나가고
로빈의 입맞춤은 장난 속에 사라졌다
그러나 콜린의 눈 속에 있는 입맞춤은
밤이나 낮이나 나를 떠나지 않는다
- 사라 티즈데일 <눈길> (류시화 옮김)
비밀과 고독은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서머셋 모옴은 '가장 오래 가는 사랑은 보상받지 못한 사랑이다'라고 썼다. 진짜 사랑은 낮의 열기와 떠들썩함과 희롱들이 끝나고 밤에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집은 조용하고 세상이 고요할 때, 문득 우리 마음을 스친다.
섬세하고 감미로운 서정시로 비평가와 대중의 찬사를 받은 미국 시인 사라 티즈데일(1884~1933)의 대표시 중 하나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부유한 침례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티즈데일은 간호사가 붙어 다녀야 할 만큼 몸이 허약했다. 막내에다 다른 형제들과 열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서 자신의 표현대로 '고된 세상의 한 송이 꽃처럼' 보호받으며 자랐다.
아름다운 미모로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은 티즈데일은 가족과 함께 간 플로리다 해변에서 다섯 살 연상의 배첼 린지를 만났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으며, 린지는 매일 사랑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난한 시인 린지는 '보호받는 꽃'인 티즈데일을 경제적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 청혼을 포기했다.
이듬해 티즈데일은 자신의 시를 좋아하는 사업가와 결혼했으나 실연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평생 아파했다. 결국 45세에 이혼하고 뉴욕에서 혼자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옛 애인 린지와 마주쳤다. 린지도 다른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불붙은 사랑은 짧게 끝났다. 일 년 뒤 불우한 시인 배첼 린지는 자살로 생을 마쳤다. 심장이 부서진 티즈데일은 홀로 방 안에 칩거하다가 2년 뒤 그의 뒤를 따랐다. 이 시가 실린 시집 <사랑의 노래(Love Songs)>로 티즈데일은 콜럼비아대학교 시문학상(훗날의 '퓰리처상')을 받았다.
숟가락으로 삶을 계량하며 살아간다 해도 누구나 그런 미완성의 사랑,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엇갈림, 하지만 오래 남는 사랑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갈망했지만 시도하지 못한 입맞춤'이. 우리는 그것을 기억 뒤편에 묻어 두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지만, 시인이 고백하듯이, 그것은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사랑만이 아니라, 어쩌면 미완의 욕망이기에 오래가는 것이런가. 혹은 오래가기 위해 그 페이지가 완성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art credit_Ali Al Tajer
눈길/사라 리즈데일
2020. 3. 7.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