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항/권수인


북적거리던 북항이 고요하다

벽에 걸린 마지막 달력처럼,

 

간간이 파도 울음 사이로 꼬리만 남은 겨울이 서표처럼 꽂힌다

열리고 닫히는 수많은 페이지

모래밭에 찍힌 활자를 물결이 지우고

그 틈으로 소리만 드나든다

 

바다는 겨울의 마지막 장을 남겨두고

차마 넘길 수 없다는 듯

다 읽지 못한 파도의 호흡을 다시 덮는다

 

동안거에 들 수 없는 파도는

차가운 바람에 머리를 식히며

끊임없이 모래밭에 밑줄을 긋는다

끝장까지 정독을 하고 나면 또 한해가 바뀔까

 

저 깊은 수심을 건너

수평선을 넘어간 나의 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물수제비를 날린다

서너 번 물꽃이 핀다

 

물살에 떠밀려 마침표로 서 있는

저 폐선은 바다의 아픈 손가락이다

 

갈매기 한 마리 출항을 알리던 낡은 깃대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본다

북항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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