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생존 방식/김효정


산기슭의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촘촘한 구멍들이 층층이 계단을 오르는 마을*

멀리서 보면, 작은 구멍들이 어떻게 통하는지

골목은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지만

가까이 끌어당겨 보면, 골목은 구멍들을 이어주는 숨길이고

구멍은 숨을 저장하는 숨통이다

숨길을 터가는 골목의 물밑 작업은 그래서, 치밀하다

한 골목이 다 자라면 계단을 만들고

또 한 골목이 가득 채워지면 또다시 계단을 오르는

계단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구멍으로 연결되어

실핏줄처럼 퍼진 골목들이 막힘없이 흐른다

 

앞집은 뒷집을 가리지 않아 그늘이 자라지 않고

뒷집은 앞집으로 내려오지 않아 노을도 공평하다

낮에는 햇볕 버무려 구멍마다 발라놓고

밤이면 별빛 달빛이 내려와 빈 마당에 수를 놓다

졸린 눈꺼풀 끔벅이며 집으로 돌아가면

소리들로 붐비던 담벼락도 그제야 잠이 든다

지쳐 잠든 새벽을 다독이던 솔솔바람은

동우네 강아지 낳은 이야기 구멍마다 흘리면서

늦잠 자는 아침을 깨우고, 빠끔한 얼굴로 구멍을

빠져나온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단숨에

그 많은 골목을 날아서 학교에 갈 것만 같다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표정들이 한 호흡으로 모여

어깨를 맞대고 이마를 맞대고 생각을 맞댄 골목들

이것은 오늘이 어제를 위해 숨길을 트는 방식이다

*감천문화마을 :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내2로 203번지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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