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이른 안개

박종국(교사, 수필가)


연일 장맛비가 발목을 잡더니 오늘 아침은 철 이른 안개가 짙다. 불과 몇 미터 앞을 가늠하지 못할 만큼 떼거리로 웅크리고 있다. 이만한 안개가 설쳐대는 건 수년전부터다. 원래 창녕지방에는 그다지 안개가 끼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주변에 합천댐과 밀양댐을 막고 나서부터 달라진 기상징후다(물론 두 댐을 쌓은 지는 오래됐다).


자연을 홀대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남태평양의 ‘투발루’를 비롯한 여타 나라들의 침해와 대홍수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올 여름만 해도 이상기후로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는 수백 명이 더위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일 계속되는 후텁지근한 날씨로 상대적으로 건강에 취약한 노약자들이 자연홀대의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야, 이제는 하동부근에서도 바다고기가 잡힌다더라. 그러니 하동 재첩이란 말이 옛말이 됐지. 다 바닷물 역류 때문에 그런 거래”

  “섬진강 하구에서 하동포구까지 거리가 얼마냐? 거기까지 바닷물이 올라온단 말이냐?”

  “그래, 지난 일요일 하동 토박이 친구를 만났는데 그러더라”

  “밀양이나 거창, 대구, 안동에 집단재배 하던 사과가 강원도 홍천 철원까지 북상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네그려.”


기상이변에 관한 이야기는 그다지 에둘러 살펴볼 게 없다. 우리 생활 주변만 조금 관심 있게 챙겨본다면 빤하다. 이젠 여간해서 포도나 사과를 비롯한 과수농사의 결실을 보기 힘들다(그렇다고 해도 시장에 과일은 지천이다). 웰빙이니 자연 친화니 해서 도회지 소비자들은 무농약 과일과 야채를 원한다. 그렇지만 정작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잦은 장마와 이상기온으로 병충해가 끓고, 잡벌레들이 기승을 부린다. 어디 벌레들이 그냥 물러  서나.


그나마 요즘 같은 때 결과를 앞둔 과실들이 까치 떼의 습격을 받고 나면 마른 담배가 피우게 된다. 이제 농사도 종자 비료값 품삯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애써 농사를 지어봤자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개발이데올로기로, 경제성장일변도로 전국토를 산업화(공장화)한 탓이다. 이제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김제만경평야는 아직 지평선을 간직하고 있으려나). 김해평야는 군데군데 버짐처럼 공장이 들어섰다. 그런 속에서 올바른 농사가 가능하겠는가. 


지금 농촌 곳곳에도 문제투성이다. 돈께나 있다는 농투성이들은 더 이상 농사에 천착하지 않는다. 물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좀더 손쉽게 왕창 돈을 벌 수 있는 요령을 텄다고 할까. 조상대대로 땀을 묻었던 땅위에 축사를 짓고 소돼지를 기르고 있다. 농부가 축산업자로 전업한 셈이다. 그까지도 좋다. 문제는 그 와중에서 쏟아져 나오는 분뇨처리다. 이제 농촌의 샛강은 가축분뇨로 썩어서 퀴퀴한 냄새만 진동하고 있다. 이게 요즘의 농촌 현실이다. 오염 그 자체는 농촌사회도 도시 못지않게 배출하고 있다. 모두가 한통속이다.


이제 그 어느 누구도 환경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도시건 농촌이건 간에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무차별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 오죽하면 오직 인간만이 쓰레기를 마든다고 했을까. 어느 동물도, 여느 식물도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다. 자연을 강탈하고 지배하는 건 사람이란 동물만이다. 아직도 안개가 걷히지 않고 있다. 무슨 안개하나로 오두방정을 떠느냐고 하겠지만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자연을 홀대하는 얄궂은 처사를 멈춰야한다. 환경오염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부메랑으로 되돌려진다. 2010. 09. 14.

  


출처 : 박샘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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