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송 제 35집 원고>


물의 속성을 닮은 경상인의 삶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바로 참다운 경상인


박종국(5회 졸업, 교사, 수필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에 소중한 무엇인가를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아픈 상처를 안은 채 슬픈 기억을 품고 평생을 살아가고, 어떤 이는 아름다운 기억을 곧잘 떠올리며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행복과 불행은 바로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기쁨과 슬픔 중에 어느 것을 마음에 품느냐에 따라 행복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맑고 푸른 하늘,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누군가의 맑은 눈동자 하나, 미소 짓는 그리운 얼굴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살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품고 살면 좋은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내 생각과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생김이 다르듯 살아가는 모습도 모두가 다릅니다. 살아가는 사고방식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성격 또한 다릅니다.


  서로 맞추어가며 살아가는 게 현명한 삶입니다. 칭찬과 격려는 힘을 주지만 상처를 주는 일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우선 남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본다면 자신도 남들의 입에 오를 수 있는 말과 행동으로 수 없이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말은 적게 하고 베푸는 선한 행동을 크게 해서 자신만의 탑을 높이 세워 가면서 조금은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에 소중한 무엇인가를 품고 살아


  그런 바람으로 매번 총동문회 행사나 동창회 모임 때면 선후배간에 따뜻한 마음을 나눕니다. 졸업한 지 어언 30년. 그 동안 모교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자갈 투성이었던 운동장은 인조 잔디로 말끔하게 단장되었고, 청송관을 비롯한 교사(校舍)도 한층 덩치가 커졌습니다. 어느덧 모교 은사님도 지천명(知天命)을 거쳐 이순(耳順)에 다다랐고, 우리들도 불혹(不惑)의 나잇살을 훌쩍 넘겼습니다.


  보통 40세 때의 불혹까지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완성을, 50세 때의 지천명 이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하늘의 원리를 밝히며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또 이순은 학자에 따라 "소리가 귀로 들어와 마음과 통하기 때문에 거슬리는 바가 없고, 아는 것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 또는 "말을 들으면 그 미묘한 점까지 모두 알게 된다."거나,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 등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세상사는 이치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지혜는 물의 속성과 같습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이는 순리에 따른 행동을 말합니다. 즉 지속적이며 겸손한 행동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경상인의 삶의 태도는 서로를 부추겨줄 만큼 탄탄합니다. 세상에는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이 제 모습 제 빛깔로 살아갑니다. 간단없는 생활입니다. 무시로 만나는 경상 선후배들의 친근한 만남은 물의 속성을 닮아 한 치의 거스름도 없이 순정하다고 자부합니다.


  물은 담는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물은 형태가 없는 듯하지만 반듯한 그릇에 담기면 그 실체를 가집니다. 경상인의 생활 면면도 이와 같습니다. 한 가지에 난 나무는 갖기 다른 잎사귀를 만들지 않습니다. 다 다른 것 같지만 하나의 형태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경상 총동문회 조직의 문화도 비익조(比翼鳥)나 연리지(連理枝)같이 하나의 날개로 비상하고 있으며, 한 가지붙이로 경상인의 삶의 목표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물은 다른 성분과 결합하면 새로운 성분으로 태어납니다. 그렇듯이 경상인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 생활 현장에서 체득한 경륜을 다른 동문들과 합하면 더 큰 효과를 냅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문 상호간의 사귐은 유다릅니다. 언제 어디서든 거듭 만나도 변함없는 얼굴로 마주 대할 수 있어 참 행복한 인연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고, 또한 그러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게 경상인으로서 사는 참맛입니다. 경상인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삶의 지혜는 물의 속성과 같아


  산다는 것, 참 좋게 산다는 것 자체가 크고 화려한 공치사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내세울 것 없는 조그만 일 하나에도 커다란 의미부여를 하고파집니다. 친구를 만나는 일이 그렇고, 지인을 만나고, 동문선후배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하물며 낮달처럼 애틋하게 만나는 연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더욱이 도반(道伴)으로, 동문으로 만나는 기쁨은 나이나 지위고하를 가릴 것 없이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할 따름입니다. 내게 그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다지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젊은 나이에 국립대학 교수로 당당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마치 포효하듯 강단 있는 강의는 뭇 사람들을 매료시키고도 남습니다. 벌써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에게서 받은 열정은 늘 가슴 뿌듯하게 차있습니다. 그게 경상인의 저력입니다.


  인간은 사교적인 동물입니다. 그렇기에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은 조금도 즐겁지 않습니다. 메마른 정서를 지닌 사람과 만나느니 차라리 말없는 풀꽃과 교유하는 편이 낫습니다. 답답할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재지(才智)에 의해서 만난다기보다 심정(心情)에 의해서 만나는 편이 훨씬 더 좋은 빛깔을 품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만남이라면 간담상조(肝膽相照)하듯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어지교(水魚之交)하듯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키케로는 ‘우정에 관하여’ 설파하면서 ‘친구는 또 하나의 나다.’고 했습니다. 닮은 사람끼리 무리를 이룬다는 얘기겠지요. 물은 방원(方圓)의 그릇을 따르고, 사람은 선악의 벗에 의해 사람됨이 달라집니다. 평생을 두고 좋은 벗을 갖느냐 나쁜 벗을 두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사귀는 벗에 따라 그 일생이 좋은가 나쁘게 되는가가 결정됩니다. 누구나 선행(善行)을 하듯 좋은 뜻을 펴면 다가오는 삶의 향기가 아름다워집니다. 분명한 것은 친구를 사귈 때 외모가 훌륭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칭찬하지 말 것이며, 외모가 볼품없다고 경멸하지 않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약수물, 흙탕물, 빗물 등 물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처신머리가 달라집니다. 물은 온갖 더러운 것을 다 씻겨 줍니다. 하지만 물이 지나치게 많으면 홍수가 나고, 또한 지나치게 적으면 가뭄이 납니다. 자신의 분수에 맞는 생활은 삶의 활력을 더해 주지만, 극단적인 사고나 행동은 오히려 불행을 초래합니다. 상대방의 어려움에 대한 배려와 관심, 대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은 경상 동문의식의 참다운 발로입니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바로 참다운 경상인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상인의 참다운 표상은 항상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고 행동하는 데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맑으나 고인물은 썩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에게서 묻어나는 삶의 향기는 아름답습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입니다. 물은 강, 저수지, 호수, 바다 등 있어야 할 곳에 있습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 경상인의 삶의 자세도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생각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흔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합니다. 당연한 얘깁니다. 위사람, 동문 선배가 모범적으로 바로 서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동문의식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이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형에 따라 굽이쳐 흐르듯이 동문선배됨은 달라야합니다. 다 다른 삶의 환경에 있는 동문선후배의 삶에 따뜻하게 배어들어 있고 포용하며 찬연한 삶의 목표를 함께 지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룹니다. 그렇듯이 개인의 작은 힘도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경상이 배출한 걸출한 인재는 이제 1만 6천여 동문가족으로 사회 일각에서 제자리 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동문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단계씩 실천하는 생활은 종국에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 됩니다. 하여 물의 속성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모든 생명체의 필수 영양분이듯 동문의식의 발로에 있어 꼭 필요한 사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바로 참다운 경상인입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야겠습니다.  

   

/박종국

경남 창녕 출생. 수필가. 칼럼니스트. 진주교육대학교. 창원대학교 대학원(교육사회학 전공)졸업.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 활동. 경남작가회의 회원 이사. 한국작가회의 회원.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 함께 나누는 사랑은 아름답다』, 도서출판 두엄. 2002. 『하심』, 에세이출판사. 2007. 현재 창녕부곡초등학교 교사.

 

 

 

출처 : 박샘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메모 :

'수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타행(利他行)  (0) 2010.09.15
[스크랩] 철 이른 안개  (0) 2010.09.15
[스크랩] 참다운 부부애  (0) 2010.09.15
[스크랩] 열무가 있는 여름_배혜숙  (0) 2010.09.15
[스크랩] 멋있는 사람들_김태길  (0) 2010.09.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