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부부애


박종국 


  “평소 나만한 남편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글쎄, 오늘 아침 아내가 느닷없이 별거를 선언하면서 생각을 좀 해보자는 거야. 아, 어찌나 가슴이 철렁했던지…. 왜 그러냐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되물었지. 근데 아내는 말없이 조용히 웃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누구 잘못이니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고. 아내 성격은 내가 잘 알지. 내 아내는 실수하거나 헛된 말을 할 사람이 아니거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라도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평소 잉꼬부부로 소문난 친구의 벼랑 끝 이야기다. 그는 열렬한 구애로 어렵사리 결혼하여 남들 보기에 부러움을 사는 부부다. 아내는 아름다운 미모와 재기를 갖춘 사랑스런 여자였고, 남편은 헌칠한 잘 생긴 외모에다 매사 적극적인 행동의 소유자다. 그는, 아내에게 청혼을 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나랑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라고 명세했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게 잘 안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친구는 혹시 아내에게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애써 말꼬리를 흐렸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흔히 남자들은 착각에 빠진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남편일수록 그 정도는 심하다. 왜냐? 사랑하는 아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퍼붓고 있기에 아내도 그 사랑을 느끼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각자의 사랑법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못 느끼는 것이 의아하다고 했다.


  “솔직히 나만큼 아내한테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해. 아내가 별거를 생각할  정도로 나한테 불만이 있는 줄 몰랐어. 그런데 아내가 이러는 거야.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은 들어주지도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해주었어. 그러니까 그것이 아무리 고마운 것이라도 난 그게 사랑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어.


  친구는 무척 허탈해 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남편이 아무리 아내에게 잘해주어도 정작 아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니 말이다. 그렇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잘 들어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고 사랑을 의심하게 된다. 여자는, 작지만 자신이 중요하거나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을 남편이 배려하고 도와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여자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바로 관심과 이해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평소 아내의 말에 성의껏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증거다. 결국 아내는 그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아무리 남편이 사랑을 퍼부어도 아내의 사랑의 그릇은 채워지지 않는다.   


  많은 여자들은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남자가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원하는 것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러지 않을 경우 서운해 한다. 그러나 남자는 다르다. 남자는 여자의 섬세한 마음을 읽는 데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 여자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지만, 남자는 기질적으로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한다. 남편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확실하게 요구해야 한다. 가능한 한 정확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청해야 한다.


  적어도 내 남편만큼은 다르다고 생각해서 우회적으로, 은근설적 표현해도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하면 대부분 쇠귀에 경 읽기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 남편을 설득하겠다는 생각보다 도움을 청한다는 태도를 확실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남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의 멋진 흑기사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아주 가까운 존재이고 편한 존재이지만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 부부간에도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때문에 그러한 예의를 지키면서 분수에 맞게 사는 부부의 모습은 아름답다.


  부부간에는 서로를 애틋하게 사려주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서로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동등할 수 있어야한다. 부부간에는 높낮이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자신을 낮추어 다른 식구의 성향에 자신을 맞추려고 애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기에 자기의 개성은 살리면서도 부드럽고, 상냥하게 가족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지혜로운 태도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부간에는 따뜻한 말씨를 가져야한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말 그릇을 엎질러서는 안 된다. 세상에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참 좋은 인연으로 만난 부부가 이뤄낸 가족울타리는 따뜻한 말로 서로를 부추겨 줄 수 있는 힘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너그러운 남편은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는다. 슬기로운 아내는 신비로울 만치 아름다운 사랑을 엮어낸다. 가족의 기를 살려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부부간에는 같이 만족하고 감사하며 고마워할 일들이 많아야한다. 서로에 대한 고마운 감정을 잃지 않는 마음씨가 소중하다. 그럴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된다. 부부간에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않아야하고, 불행에 익숙해지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불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좀처럼 헤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행복은 스스로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뒤따른다. 가정의 행복도 마찬가지다. 매사 불평불만을 앞세우는 사람한테 행복은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가정의 행복은 부부가 한마음으로 일궈가는 꽃밭이어야 하고,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행복을 찾는데 집중해야한다.


  부부로 살면서 얼굴을 붉힐 일이 많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사소한 일에도 남편을 닦달하고 아내를 힐책할 때가 있다. 자신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되면 공연히 상대를 비난하는 된다. 그렇지만 부부간에 자격지심을 갖고 서로를 성토하는 일만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오직 자기만 대접받으려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호의를 갖거나 배려하는 마음의 그릇이 얕다. 그러니 자연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되풀이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마음 아파하는 가족을 헤아리지 않는다. 더욱이 그런 사람일수록 바깥에 나가서는 사람 좋다고 인정받는다.


  또한 부부간에는 조그만 약속이나 원칙을 정하면 반드시 지켜야한다. 서로를 따뜻하게 일깨워줄 수 있는 조언자가 될 수 있어야한다. 항상 좋은 말만하고 칭찬만 하고 살 수 없다. 그런 삶은 서로 피곤해진다. 가끔은 얼굴을 찌푸리는 경우가 있어도 잘잘못을 명확하게 가려낼 수 있어야한다. 상대방의 좋은 뜻을 좋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 그게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그린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 부단한 자기 성실이 뒤따라야한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니 여고금슬(如鼓琴瑟)이니 비익연리(比翼連理)니 부처본시동림조(夫妻本是同林鳥)와 같은 말은 부부 사이가 화락(和樂)함을 일컫는 말이다. 부부 사이가 좋아서 마치 거문고나 비파를 타듯이 비익(比翼)처럼 의좋게 짝을 지어 살고, 연리(連理)같이 서로 잇닿아서 결이 서로 통하는 부부의 삶은 더없이 아름답다.


  사랑에는 언어가 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근데 넌 뭐야? 내게 해준 게 뭐야?” 이렇게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원망하지만 그 상대 역시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사랑은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언어로 표현해야한다. 서로 상대방의 사랑의 그릇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의 언어로 에너지의 흐름을 나누어 가져야한다.


  부부라면 응당 생각하고 반응하는 법이 나랑 같을 것이라는 착각은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일이다. 부부니까 같이 생각해야한다는, 그래서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닮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이런 생각 대문에 많은 부부가 상대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부부생활을 행복하게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노력은 상대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할 뿐만 아니라 다툼만 생길 뿐이다.


  변화는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하여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신뢰의 시작이다. 이런 신뢰라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이다. 사랑을 기초로 하지 않고 단지 소유로만 일관하며 살았던 까닭이다. 부부는 서로 의리와 은혜로 친하고 사랑해야 한다. 참다운 부부란 두 개의 반신(半身)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이다.


  참다운 부부애는 자주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어루만져주는 그 작은 노력을 통해서 쌓이게 된다. 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의 그릇이 가득 차면, 그 사랑이 내게로 넘쳐오고, 종국에는 온 가정에도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마더 테레사의 말씀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사랑이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만 꾸준하게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등잔이 어떻게 빛을 내는지 살펴보십시오. 작은 기름방울들이 끊임없이 공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은 기름방울들이 바로 매일의 삶을 채우는 사소한 것들입니다. 성실한 태도, 친절한 말 한마디, 남을 배려하는 마음, 말을 삼가는 태도, 바라보는 눈길,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것들이 우리의 삶과 만남을 불꽃처럼 타오르게 하는 사랑의 기름방울인 것입니다.


/『경남작가』2010년 18호 원고.

 

 

 

출처 : 박샘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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