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하늘 밑에서

 

 

성 기 조 (시인,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9월이다. 여름하늘을 덮고 있던 뭉게구름이 말끔히 가시고, 작고 아담한 조개구름이 하늘 한가운데에 군데군데 피어 올랐다. 파란 하늘 사이로 보이는 탐스런 조개구름을 보며 목 쉰듯한 매미소리를 듣노라면 가을이 왔음이 완연하다.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지났다. 아침저녁으로 선들거리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열었던 창문을 닫아야 하는 처서도 지났다.

 

창문을 닫고 온기가 느껴지는 방안에서 차분한 생각에 잠겨드는 일도 9월에는 자주 있어야 한다. 여름내 서성이던 삶에서 조용히 물러나 생각하는 삶, 뒤돌아보는 일들이 있어야 속살이 넉넉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은 하늘의 조개구름처럼 겹겹이 쌓여 밀려오지만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하나하나 정리하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삶이 둥둥 떠다니는 물거품처럼 연속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성찰을 거친 뒤에 행동으로 옮겨지는 기회를 갖지 못한 까닭이다.

 

창틈으로 하늘을 엿보다 조개구름이 가지고 있던 흰색이 점점 엷어지고, 하늘이 파랗게 물들어 눈부신 것을 발견했다. 동네 어귀에 쌓아놓은 돌탑이 파아란 하늘을 이고 손짓한다. 오가는 사람들의 소망을 빌기 위하여 쌓여진 돌탑은 누구의 소망이랄것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참회, 화해와 용서, 그리고 회개의 마음을 담아 끝간데 없는 우주에까지 전파하려고 높이 쌓여져 있다.

 

널찍한 터전을 잡고 쌓여진 돌탑은 높아질수록 작고, 좁게 쌓여져 제일 마지막에는 신기하게 잘 생긴 돌 하나로 마무리 되어 있다. 나의 소망을 이루게 해달라고 돌을 쌓는 사람들의 경건한 마음은 한 칸씩, 한 칸씩 쌓아올라가면서 더욱 간절해진다. 돌을 쌓는 일은 기다림이요, 인내이지만 결국은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란 희망 때문에 지칠 줄 모르고 쌓여진다. 간절한 소망의 종착점은 결국 우주이겠지만 돌을 쌓는 사람들은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란 희망을 갖는다.

 

희망은 기도하는 심정이기에 ‘무엇이고 이루게 해주십시오’란 말로 끝맺는다. 나를 잘되게 해달라던가, 가족의 건강을 보살펴 달라던가, 아니면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결국에 기도는 절대자 앞에 엎드려, 자신의 욕망을 들어 달라는 애원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부끄러움 없이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가르치고 있는지 모른다. 때문에 많은 명상가들이나 철학가들이 “이런 기도가 대답을 찾을수도 있지만 그것은 자기 연민에 불과한 메아리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9월, 파아란 하늘이 지구를 뒤덮고 삽상한 바람이 알맞게 부는 이 계절에 소망을 담은 기도를 하는 시간이나 삶의 성찰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깨닫는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기도뿐 아니라, 나의 소망을 담은 돌맹이 하나라도 올려놓아 돌탑을 만드는 간절한 시간을 가져보아야 한다. 탑이 높아질수록 둘레가 작아지듯 나의 소망도 작아지는 이치는 ‘비움’의 철학에서 깨우쳐야 한다. 돌탑이 하늘 높이 올라가면 결국은 뾰족한 부분이 되는 까닭, 마음속에 수없는 소망을 담고 기도하거나 외쳐보았자 모두 이루어질 수 없듯, 마음을 버리고 비우는 소중함을 깨우쳐야 한다.

 

우리가 갖는 소망이나 외침, 그리고 기도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꼭 필요한 것, 허황되거나 부끄럽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절대자나 창조주, 하나님이나 부처님은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 하나만 들어 줄 것이라고 믿어 보자. 꼭 필요한 소망을 하나씩만 가지고 이 가을을 살아보자.

 

너절하고 욕심많은 찌꺼기들을 버리고 간절한 소망을 하나씩만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인내하고 참회하고 회개하는 진정한 삶이 참 사람을 만드는 길이라고 믿어야 한다. 화해와 용서, 그리고 희망을 거울삼아 살아가야 한다.

 

 

 

출처 : 박샘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