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주와 설탕물/강돈묵

 

어려서 나는 단 것은 오직 감주뿐인 줄 알았다. 그것도 강바닥이 얼어터지는 겨울밤에 마시는 감주의 맛이란 그 무엇에 비할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어머니는 감주를 뜨러 나가신다. 방문을 열고나서면 칠흑의 마당 저편으로 어둠이 도망쳤다. 등을 든 어머니 뒤엔 으레 내가 양푼을 들고 따랐다. 김치 광에 들어서며 어머니는 등을 내게 넘겨주시고, 내 손의 양푼을 가져 가셨다. 감주가 가득한 양푼을 들고, 칼바람에 쫓겨 방으로 다시 들어올 때는 기분이 좋았다. 양푼에 담긴 감주에 형제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희끄무레한 색깔을 띠고 있는
감주, 어쩜 저 색깔이 단맛을 내는 것이려니 했다.

 

좀 나이가 들어 배앓이하면서 아버지에게서 얻어먹은 설탕물은 전혀 색깔이 없었다. 장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방바닥을 기면 아버지는 장롱 속 깊이 감추었던 설탕을 꺼내 한 숟갈 타 주셨다. 그 물은 신기하게도 내 배를 고통에서 구출해 주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깨끗한 물인데, 그것에는 이런 신통한 효력이 있었다. 어떤 때는 감주보다 훨씬 단맛을 내었다.

 

배앓이로 방바닥을 쓸고 있다가도 설탕물로 통증이 가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래서 동네 마당으로 나가 구슬치기를 했다. 구슬이래야 요즘처럼 유리구슬도 아니었다. 뒷산 언덕에서 주운 상수리가 고작이었다. 가을이 어느 정도 익어 가면 어른들은 메로 상수리나무를 두드렸다. 설익은 상수리를 털어 내린 것이다. 마당 한가운데 펼쳐 널었다가 묵을 해 먹었다. 이 상수리를 부모님 몰래 호주머니에 넣고 나가 우리는 구슬치기를 했다.

 

친구들에게서 많이 딴 날은 장롱의 서랍이 상수리광이 되었다.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상수리들의 요란함은 듣기에도 좋았다. 친구에게 모두 잃고 들어온 날, 어머니는 골방에서 말린 상수리를 한 줌 내어주며 내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나는 다시 신이 나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면 “넘어질라 조심해서 가렴.” 하는 어머니의 말씀이 내 등 뒤를 쫓아왔다.

 

저녁이 이슥하도록 놀다가 빈 호주머니로 쓸쓸하게 들어오면 아버지는 마당가에서 나를 불러 세우곤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상수리 몇 개를 꺼내 주셨다. 많은 개수는 아니었다. 언제나 서너 개를 내 손에 얹어 주셨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웃으셨다.

“이거, 네 호주머니에서 떨어진 거지? 조심하지 않고.....,”

처음에는 그게 사실인 줄 알았다. 나중에 내가 가지고 나간 것의 수와 똑같을 때도 그런 말씀을 하셔서 그 동안의 말씀이 달랐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같은 말씀을 가끔 하셨다. 언제나 없는 듯이 나타나서 내게 힘을 주시곤 했다. 더러 내 서랍에 상수리가 까닭 없이 많아진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그 원인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에 거짓이 있음을 알고 난 후부터는 아버지의 배려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게되었다.

 

추운 겨울날 밖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불룩해진 호주머니를 받쳐들고 들어올 때는 신이 났다. 대문을 들어서며 엄마를 불러댔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내게로 달려와서는 꼭 껴안고 당신의 볼을 내 볼에 포개어 비비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볼이 내 볼의 한기를 몰아내어 주었다.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이러한 동작은 한참 후에야 끝이 났다. 어머니의 따뜻한 볼이 따뜻하다는 느낌이 지워져야 마무리됐다. 어쩌다 힘을 더하며, ‘으그, 내새끼.’ 하실 때는 내 몸이 으스러질 듯이 옥죄어 왔지만 결코 싫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이사 가는 친구의 집에 갔다가 늦은 적이 있었다. 밤이 그렇게 늦어진 줄도 모르고 우리는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한참 놀다 보니 시간이 제법 되었다. 어른들이 먼저 짐을 싣고 떠났다가 내일 와서 친구를 데려가기로 되어 있어서 아무도 우리에게 시간을 일러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황급히 문을 열고 나왔을 때는 엄청난 눈이 내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더럭 겁이 났다. 그때는 연락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집에서 머물 상황도 아니었다. 용기를 내어 친구의 집에서 나왔다. 하얗게 뒤덮인 들판.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논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는 하얀 벌판이었다. 잘못하면 구렁으로 빠질 것만 같은 밤이었다.

 

다행이 밤이라 해도 눈이 와서 주위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한참을 헤메며 걷다보니 저 앞에서 아버지가 오고 계셨다. 나를 마중 오신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올려다본 아버지의 키는 산마루보다도 더 높아 보였다. 내어주는 아버지의 등에 말없이 업혔다. 내가 헤매며 걷던 길을 아버지는 잘도 걸으셨다. 한 번도 옆으로 빠지지 않고 걸으셨다. 아버지의 차분한 목소리가 내게 다가왔다.

“무섭지 않던?”
“많이 무서웠어요.”

편안한 아버지의 등에서 깨어난 것은 집 앞에서 였다. 집 앞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당신의 등에서 나를 내려 놓으셨다. 그리고는 내가 빨리 정신을 수습하기를 권하셨다. 겨우 정신을 되찾아 바로 섰을 때, 아버지는 느닷없이 집안을 향해 소리치셨다.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차분하고, 조용하시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 이놈아. 어린 것이 그 눈 속을 어떻게 혼자 왔어.”
“우리 집에 대장군이 나왔어, 대장군이.”

 

그날 나는 아버지의 그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 의미를 안 것은 그러고도 몇 해가 지난 후였다. 지금 고향집에 가면 뒷산의 상수리를 줍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늦가을 찬바람에 떨어져 여기저기 굴러다닐 뿐이다. 그것을 주워 묵을 만들어 나눠 먹을 가족이 없고, 구슬치기하도록 내 호주머니에 넣어 주시던 두 분도 이 세상에는 다 아니 계시다. 다만 감주같이 색깔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사랑과 아무 색깔도 없이 달기만 하던 설탕물 같은 아버지의 사랑이 내 가슴에 잔잔히 고일 뿐이다. 이번 주말에 선영에 다녀와야겠다.

 

 

 

출처 : 박샘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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