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 바꿔요

박 종 국


거리마다 차량물결이다. 그러나 낡은 차는 자주 눈에 띠지 않는다. 그만큼 신형차량들이 많다. 요즘은 아무리 좋은 차라도 불과 서너 달이면 구형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 변화가 얼마나 재바른지 멥새가 황새를 좇다가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내 차는 1996년 산 에스페로다. 이미 차령이 15년이다. 때문에 중고차라기보다 폐차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 동안 33만 여 킬로미터를 달렸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릴 것 없이 나다녀 혹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직은 차량내부는 말짱하다. 그렇지만 외양은 검버섯이 피었고, 녹내가 덕지덕지하다. 보험회사 감정가로 채 20만원도 안 된다. 숫제 그저 준다고 해도 가져갈 사람이 없다. 오죽했으면 폐차장에서도 마다하다시피 할까.


어제 퇴근길에 단골 정비소에 들러 엔진오일을 보충했다. 차가 오래 되어 그런지 엔진오일을 갈아도 채 한 달 못 미쳐 엔진 부대끼는 소리로 달달거린다. 엔진 게이지가 낡아서 기름도 샌다. 운전 중에 기름 냄새가 심하다. 암튼 쓸데없는 오일 소모가 많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신형차들 같으면 5천이나 만 킬로미터 정도를 주행하고 엔진오일을 교환한다. 그에 비하면 너무나 자주 정비소를 들락거리는 나를 두고 정비주임은 갈 때마다 이참에 새 차 하나 바꾸라는 지청구가 끊이지 않는다.


학교 아이들도 그렇다. 고물차를 몰고 다녀 옹색하게 보이는지 ‘똥차 바꾸라’고 야단이다. 선생님 체면이 안 선단다. 개적인 생각으로 차는 굴러만 가면 그만인데…. 정작 나의 의사보다는 주변에서 손사래 치는 경우가 더 많다. 심지어 가다가 서 버리면 어떻게 할 거냐고 지레 걱정까지 마다하지 않는다(사실 난 새 차를 구입할 여력도 없다. 만약 그럴 돈이 있으면 도서나 여행경비로 충당할 거다).


요즘 들어 사람 그 자체보다는 모는 차의 품격에 따라 사람을 가늠하는 것 같아 뜨악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설핏 비교가 되는 것이다. 내심 나잇살이 지천명에 다다랐건만 내 속도 은연중에 욕망의 나락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동창모임에 갔다 온 날은 마음이 편치 않다. 끊임없이 마음이 일렁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반가움보다는 건네받은 명함이나 몰고 온 차의 품격이 그간의 삶을 반추하는 것 같아 자리가 불편한 게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걸치고 있는 옷차림이나 들고 있는 가방에 자주 눈길이 가고, 빳빳한 지갑 하나에도 묘한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살고 있는 거주지는 물론, 집의 평수와 필드 이야기 등등에 따른 생활상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해진다. 출발은 똑같이 했건만, 이미 속한 계층화도, 생활정도도, 성취의 결과도 확연하게 달라진 친구들을 보며 인생의 성패에 대한 성급한 판단과 그로인한 열패감으로 가슴앓이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똥차로 인한 푸대접의 기억은 숱하다. 시내 어느 호텔에 내 고물차를 들이댔다가 그냥 쫓겨났다. 고교 총동문회 졸업30주년기념식 자리였다. 그들은 고객관리 차원에서 호텔 안에는 저급한 차량을 주차할 수 없다고 했다. 차량 등급으로 손님대접을 하겠다는 거였다. 근데 명색이 동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무참하게 거덜이 났으니 그 사실을 알고 난 동기들은 일말 분개하면서도 지청구 쏘아댄 화살로 내 넓은 낯짝을 다 가리고도 모자랐다.


아직 내 주변에는 아예 자동차운전면허증도 갖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운전을 마다하는 사람들도 많다(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달뜬 인간이냐?). 요즘 같은 세상에 자가운전을 하지 않으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주위의 눈총도 따끔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두주불사하고 호탕하게 산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차로 인하여 감당해야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괜한 괴리감으로 마음 아파할 까닭도 없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도 새 차를 몰고 싶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돈키호테가 비쩍 마른 로시난테를 타고 광야를 내달아갔듯이 그침 없이 대로를 활보하고 있다. 가다가 수명이 다해 꼴까닥 서 버린다고 해도 자부심을 갖고 똥차를 계속 몰 것이다. 해묵은 김치 된장이 감칠맛 나듯이 손때 묻은 차는 정말 부담 없이 편안하다. 근데도 나는 새 집, 새 차, 새 옷, 새 구두, 새 가방, 새 휴대폰, 새 스마트폰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영락없는 속물건성이다. 2010. 09. 04.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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