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식 변소에 쭈구리고 앉아서

 

                                   공광규

 

구린내에 삭아 구멍 난 양철문 틈으로

사람이 오나 안 오나 밖을 내다보니

늙은 느티나무에서 수다를 떨던 참새떼가

구기자나무에 가랑잎처럼 쏟아져 내린다

참새들은 구기자꽃 빛을 닮은 어린 발로

꽃잎을 툭툭 털어내고 있다

멀리 뿔바위에서 뻐꾸기가 옛날처럼 운다

보리 베는 일이 고단하여 몸살을 앓고 난 뒤에

가출을 생각했던 옛날이 생각나 풋하고 웃음이 터진다

누이들이 입술과 봉숭아 꽃물들인 손톱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빨간 앵두나무 그늘

추녀에 배달일 양파들이 흙 묻은 맨얼굴을

어린 자매들처럼 부비고 있다

청태산에서 비구름이 오고 눈보라 오고

철새가 날아가 석양에 박히던 옛날을 생각하는데

풍덩!

똥물이 튀어 엉덩이와 불알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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