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생각...고정희
 


그대 따뜻함에 다가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대 쓸쓸함에 다가갔다가
그 쓸쓸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떤 것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가 돌아오는 발걸음을 멈췄을 때,
내 긴 그림자를 아련히 광내며
강 하나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거리에서 휘감고온 바람을 벗었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쁜 은방울꽃 하나가
바람결에 은방울을 달랑달랑 흔들며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
이 세상 적시는 모든 강물은
그대 따뜻함에 다갔다가
그 따뜻함 무연히 마주할 뿐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뒷모습으로 뒷모습으로 흘렀습니다.

 

 

 

 

 

 

 

 

 

 

 

그대 생각 ...고정희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 하면 흐르는 강물소리여라

너인가 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 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 하면 끝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가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출처 : 시가 있는 동네
글쓴이 : 봉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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