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내가 아니야!’ 병원 침대에 누웠다가 세상 뒤로 몸을 감추기 전 친구의 말, 가면처럼 뜬 누런 얼굴, 더 이상 말을 아꼈다. 창틀에 놓인 화병의 빨간 가을 열매들이 눈 반짝이며 ‘그럼 누구시죠?’
입원실을 나와 마른 분수대를 돌며 생각에 잠긴다. 조만간 나도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겠지. 그 순간, 도대체 내가 뭐지? 묻곤 하는 조바심 홀연 사라지고 막혔던 속 뚫린 바보처럼 마냥 싱긋대지 않을까. 뇌 속에 번뜩이는 저 빛, 생각의 접점마다 전광 혀로 침칠하는 빛, 문득 사라지고, 생각들이 놓여나 무중력으로 둥둥 떠다니지 않을까. 내가 그만 내가 아닌 자리, 매에 가로채인 토끼가 소리 없이 세상과 결별한 풀밭이나 모르는 새 꼿꼿이 말라버린 춘란 갓 비워낸 화분처럼 마냥 허허로울까? 아니면 한동안 같이 살던 짐승 막 뜬 자리처럼 온기 남아 가까운 누구누구를 한동안 성가시게 할까?
무중력을 향하여 /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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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트힐
글쓴이 : 꽃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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