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황동규, 꿈, 견디기 힘든
American String Quartet - Beethoven, String Quartet No.14 in C sharp minor, Op.131 Peter Winograd, 1st violin Laurie Carney, 2nd violin Daniel Avshalomov, viola Wolfram Koessel, cello Tel Aviv Museum 2013.01 베토벤의 말년인 1826년에 쓴 이 곡은 현악 4중주로서는 특이하게 7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악장을 쉬지 않고 연주하는데, 전곡의 연주시간은 약 40분이다. 1악장은 느리고 자유로운 푸가, 2악장은 대위법적으로 쓰인 론도이다. 베토벤의 푸가는 균형 잡힌 건축물 같은 바흐의 푸가와 다르다. 각 성부가 독립된 소리를 내지만 느낌은 훨씬 자유롭다. 대위법의 엄격한 규율에 갇힌 바흐의 푸가와 달리 느슨하고 자유분방하다. 마치 네 사람의 주자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듯하다. 3악장은 길이가 11마디밖에 안 되는 짧은 악장으로 4악장의 서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악장은 주제와 6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제와 변주 모두 부드럽고 화사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전반부의 분위기는 대체로 심오하고 경쾌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5악장에 이르러 분위기가 변한다. 5악장은 매우 빠르게 연주하는 스케르초인데, 각 성부들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서로 다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다음 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하는 6악장을 거쳐 마지막 악장인 7악장으로 넘어가는데, 베토벤은 7악장 중에서 유일하게 마지막 악장만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했다. 소나타 형식에서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악장에 이르면 전반부의 느슨한 평화가 깨진다. 중간 중간 네 악기가 한목소리를 내는 유니슨이 나오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투쟁 모드로 들어가곤 한다. 같은 음을 내는 유니슨조차 어찌나 전투적인지 격렬한 불협화음의 전초전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심오한 성찰에서 느슨한 평화를 거쳐 격렬한 투쟁으로 끝난다. 대위법이라는 민주주의로 시작해 다양성이 공존하는 변주곡을 거쳐 소나타 형식이라는 계급사회로 넘어간 것이다. 소나타 형식에서 음악의 각 요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받쳐주고 또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한다. 그 속에는 조화와 공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반목도 있다. 푸가 4중주단이 다시 뭉쳐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이들 사이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할 수 없다. 인간사가 다 그런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평등, 완벽한 화합은 없다. 불협화음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아마 베토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종일관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현악 4중주 14번의 마지막 악장에서 그 뼈아픈 깨달음의 궤적이 보인다. 글 진회숙 (음악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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