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으로 물소리가 수척해진다

초록은 나날이 제 돌계단을 내려간다

나리꽃과 다알리아를 어깨에 꽂고 다녀간

구름도 어느집 내전(內殿 )자개장에서나 보리라

 

노에와도 같이

떰을 흘리며, 진땀을 닦아가며

타고난 손금을 파내던 일을 이젠 좀 쉬리라 , 여울목

여울물 소리가 수척해진다

 

 

 

 

 

여름의 끝 / 장석남

 

 

 

 

 

 

 

 

 

 

 

 

 

 

 

 

 

 

 

 

 

 

 

 

 

 

 

 

 

 

 

 

 

 

 

 

 

 

 

 

 

 

 

 

 

 

 

 

 

 

 

 

 

 

 

 

 

      여름 숲의 몸이 여위고 파리해지고 있다. 머잖아 초록은 흩어질 것이다. 초록은
      묽어질 것이다. 초록은 시방(十方)으로 달아날 채비를 미리 하고 있다. 녹음 속에서
      우는 참매미의 소리는 그 음(音)이 한 옥타브 낮아졌고, 허공의 천을 성글게 짜고
      있다. 필시 돌층계를 내려가 어딘가로 아주 가고 없을 것이다. 누군가 자연이라는
      형광의 밝기를 낮추고 있다는 느낌이다.


      선듯하게 바람이 부니 이제 일손을 잠시 놓아도 좋겠다. 호미를 씻어도 좋겠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땀을 쏟아가며' 노예로 부려지던 일에서 벗어나도 좋겠다. 그대는
      저녁이 되어 누운 소처럼 좀 쉬어라. 그러나 밤의 창문에는 가을 풀벌레 소리가 벌써
      애연(哀然)하니 그대는 그 적적한 경문(經文)을 달빛 아래에서 한 번 읽어보라.


                                                 문태준  | 시인  

 

 

 

 




 

 

 

 

 

 

 

 

 

 

 

 

 

 

 

 

 

 

그림; 임은희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꽃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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