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길

                                                                                                이    경    림

나는 술을 마시는 일보다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어느 처마 낮은 술집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즐거움과, 주위를 흐르는 한없이 풀어진 어떤 기류들, 그 속에 스며 있는 까닭 모를 슬픔…… 뭐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그런 분위기에 취해 마지막 전철을 놓쳐 총알택시로 집에 간 적도 왕왕 있었다.

술에 관한 기억으로 내게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서울대 병원 영안실이다. 아마도 90년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 어머니는 서울대 병원 심장병동에 장기 입원해 계셨다. 그래서 인사동쯤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언제나 서울대 병원 어머니 병실에 가서 자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나중에는 어머니의 병세가 자꾸 안 좋아져 중환자실에 계시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는 인사동에서 친한 시인 두엇과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편찮으신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회한에 젖어 조금 과음을 하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면회시간도 아닌 새벽에 어머니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그 쪽으로 갔던 것이리라.

여름이었는데 새벽의 대학병원 건물은 더욱 육중하고 나무들은 더위와 어둠에 짓눌려 축 늘어져 있었다. 중환자실 문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려니 막막하고 숨이 막혀 밖으로 나와 대학병원 뒤편 비탈을 올랐다. 조금 걷다 보니 마치 이정표처럼 형광색 불빛이 휘황한 영안실이 보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핏줄도 지인도 아닌, 이승에서 한 번 스친 적도 없을 존재들의 끝을 보았다.
 
취해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그곳은 담배 연기에 싸여 마치 이승이 아닌 듯했다. 그날 나는 문상객이 별로 없는 한 쓸쓸한 빈소 마루 끝에 걸터 앉아 사진 속에서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40대 중반 쯤의 소박한 인상의 그는 조금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친 상제 몇이 그 앞에 잠들어 있었다. 문득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그 시간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애옥길을 헤매고 있을 어머니 생각에 울었고, 찰나인 생이 부질없어서 울었다. 얼마 후 '현대시학'에 연재한 '이야기들' 속의 '영안실'이라는 제목의 글은 그 때의 경험을 쓴 것이어서 소개한다.

그의 앞에는 촛불 둘이 타고 있었다. 향 연기는 그들을 쓰다듬고 천장 밑 허공에 떠 있는 그의 얼굴을 스치며 돌아다녔다. 그는 그의 앞에 있는 수많은 얼굴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발관을 하는 한철이 아버지, 탄지게를 나르는 경배 아버지, 국밥을 말아 파는 재준이 엄마, 욕쟁이 이삐 할매… 그들은 한때 그가 지나온 숲이었다.
 
그들은 그가 만난 어떤 사나운 짐승, 어쩔 수 없이 딱딱하고 모질었던 돌멩이, 바람에 안절부절 흔들리던 나무, 벌떡 일어서던 절벽, 그 사이로 쉬임없이 흘러다니던 바람이었다. 그들은 자신이면서 한없이 자신이 아니었던…… 산 같은 시냇물 같은 동굴 같은 메아리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형제라는 이름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혹은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기억들이었으며 영원히 읽을 수 없는 어떤 어른거림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그들은 모두 기억 저편의 것들이었다. 그들은 지·나·간 ‘불덩어리’였으며 불가사의였으며 혼돈이었다. 그는 화투를 치고 있는 한 무리의 불덩이들을 보았다. 귀퉁이에서 슬픔에 지쳐 새우처럼 오그리고 잠든 ‘불가사의’를 보았다. 회한에 젖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혼돈을 보았다.
 
그의 회한이 향불 앞에 지폐 나부랑이처럼 부질없이 놓여 있었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신의 입자들이 뿌옇게 그들의 위를 떠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기류들로 꽉 차 있는 그 지하방은 말할 수 없이 긴 하루의 끝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한때 이런저런 이유로 막막할 때면 그곳을 찾곤 했다. 그곳에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멀고 어두운 길을 걸어 마침내 한 뼘 사진틀 속으로 들어가 물끄러미 이녘을 보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경림   1989년 '문학과 비평' 봄호로 등단. 시집 '토씨 찾기'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시 산문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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