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진 규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시는가 이것은 나락도 다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날 농사꾼 아우가 무심코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는 말씀이 당키나 한가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갈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모든 게 다 쓸모가 있다 버릴 것이 없다 아 그러나 나는 버린다는 말씀을 비워낸다는 말씀을 겁도 없이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욕심 버려야 보이지 않던 것 비로소 보인다고 안개 걷힌다고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다 욕심도 쓸모가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마음으로 보면 쓸모가 있다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 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햇볕에 내어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내거라 놀고 있는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시인과 아우는 모든 존재를 살려내서 그들과 생생한 교감의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있다. 그런데 시의 제목인 놀고 있는 햇빛이 아깝다고 한 시인의 의도는 무얼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햇볕과 더 오래 , 더 깊이, 상생의 관계를 맺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이리라. 동시에 더 많은 존재를 살려내고 싶다는 소망이기도 한 것이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은 어떤 존재와 상생의 관계 속에서 살림의 일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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