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저녁 1            

                                                                   유하

여의도로 밀려나가는 강변도로

막막한 앞길을 버리고 문득 강물에 투항하고 싶다.

한때 만발했던 꿈들이 허기진 하이에나 울음처럼

스쳐간다 오후 5시 반

에프엠에서 흘러나오는 어니언스의 사랑의 진실

추억은 먼지 낀 유행가의 몸을 빌려서라도

기어코 그 먼 길을 달려오고야 만다

기억의 황사바람이여, 트랜지스터 라디오 잡음같이 쏟아지던

태양빛, 미소를 뒤로 모으고 나무에 기대 선 소녀

파르르 성냥불처럼 점화되던 첫 설레임의 비릿함, 몇 번의 사랑

그리고 마음의 서툰 저녁을 불러 모아 별빛을 치유하던 날들 ... ...

나는 눈물처럼 와해된다

단 하나 무너짐을 위해 생의 날개는 그토록 퍼덕였던가

저만치 존재의 무게를 버리고 곤두박질치는 물새 떼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기에

오래 견디어 낸 상처의 불빛은

그다지도 환하게 삶의 노을을 읽어 버린다

소멸과의 기나긴 싸움을 끝낸 노울처럼 붉게 물들어

쓸쓸하게 허물어진다는 것,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저녁이 나를 알아 보리라

세상의 모든 저녁을 걸으며 사랑 또한 자욱하게 늙어 가리라

하지만 끝내 머물지 않는 마음이여, 이 추억 그치면

세월은 다시 흔적 없는 타오름에 몸을 싣고

이마 하나로 허공을 들어 올리는 물새처럼 나 지금

다만 견디기 위해 꿈꾸러 간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정주, 송찬호  (0) 2016.11.03
가을/조병화  (0) 2016.11.02
[스크랩] 김용택, 가을  (0) 2016.10.28
[스크랩] 권대웅 ‘아득한 한 뼘’  (0) 2016.10.28
[스크랩] 시월  (0) 2016.10.2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