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의 춤 / 배경숙

 

 

팔월이 한가롭게 기우는 며칠 전부터
4층 아파트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 달라붙어
때늦게 목청이 끊어져라 울어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울음 안간힘이다 했더니
어느새 껍데기만 남아 바람에 매달려 있다
삶도 단지 저렇게 빠져나갈 뿐인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또 맹렬히 울어대는 것인지
그 정도로 운명과 협상하지는 않을 것처럼
헛것이 아직도 아득바득 철망을 붙잡고 있으니
창틀에 스며들 리 없는 죽음의 공포가
몇 번이고 산 채로 등이 터지는
아픔 뒤의 절망을 겪는 것이겠지
울음의 끝없는 절규란 것
한때의 생이 저렇듯 껍데기일 수도 있다는 거겠지
마른 육신을 이중창의 방충망에 걸어놓은
등이 찢어진 매미 껍데기
고립으로 향해가는 슬픈 몸뚱이로
이제 배롱꽃보다 붉디붉은
인간의 불륜 따위를 넘겨보는 일은 없을 것인지
 

 

 

************************

 

배경숙 시인

 

부산 출생

 

시집

『멀리서도 보이는 이별』

『오늘 네 눈은 비와 같다』

『내 살의 회오리』

『네가 내게 이름다운 날』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메모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꽃 - 김춘수 시인  (0) 2016.02.07
[스크랩] 사평역에서 - 곽재구 시인  (0) 2016.02.07
[스크랩] 등/서안나  (0) 2016.02.05
토닥토닥  (0) 2016.02.01
[스크랩] 역전 이발 / 문 태 준  (0) 2016.01.3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