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루하고
먼길을 갈 때면 으레 거기 서 있었고
지치도록
걸어오고도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할 때
고갯마루에
꽃그늘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접어들면
건너편에서
말없이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
혼자
외딴섬을 찾아가던 날은
보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배롱나무/ 도종환
*
시집 <부드러운 직선>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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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트힐
글쓴이 : 꽃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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