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봄 / 박일만

 

 

동네를 몇 바퀴 돌아도 심심했지

애꿎은 검둥이만 걷어차고 언덕으로 치달으면

제비꽃, 날개 들어 기지개 켰지

 

어른들이 들일 나간 텅 빈 계절

제비가 식솔들 앞세우고 돌아오느라

하늘에 대고 동그라미를 치는 날은

할미꽃, 뫼똥같은 미소 연신 날렸지

 

방직공장으로 돈 벌로 간 나이어린 누나는

꽃잎이 다 져도 오지 않았고

남풍만 서슴없이 불어왔지

성급한 마음만 온 들판을 싸돌았지

그때도 개나리, 노란 웃음 지천이었지

 

끌어다 쓴 영농자금이 빚으로 쫓아다니고

넉넉지 않은 가세로 혼인없이 살다가

십수년을 건너 혼례를 치르시던 부모님

진달래, 정말 붉은 고백이었지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하루해가 길쭉했던

내 아릿한 초상肖像

이제는 뒷모습도 안 보여주는 이왕지사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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