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백두산을 등산하면서 유난히 윤동주의 시가 생각났고
그래 담자리꽃만 보면 별처럼 느껴져 ‘별 헤는 밤’을 외며 다녔다.
문학을 좋아하던 고등학교 시절 문학전집을 빌려 다니며
읽는 한편, 좋은 노트를 하나 마련해 좋아하는 시를 베껴
외우면서 다녔다. 당시는 좋아할 만한 우리나라 시인의 수가
얼마 안 되었던 시기였는데 왠지 윤동주의 시가 정서에 맞았다.
그 인연인지, 고등학교 국어 선생이 되어 35년간 교사 생활을
하면서 문학을 가르칠 때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즐겨 이야기
했다. 물론 이번에도 들렀지만, 1992년 8월초에 연변으로
백두산에 왔다가 가면서 용정중학교에 들렀는데, 그의 자취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고, 그뒤 처음 오사카에 갔을 때 일부러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 가 시비를 돌아보기도 했다.
윤동주(1917~1945)는 일제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으며, 중국의 관립
소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모두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때 송몽규와 문익환도 있었다.
1935년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했다가 이듬해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 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동시를 발표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도쿄에 있는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각각 2, 3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송몽규는 3월 10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혀 있고, 1968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1985년 월간문학사에서 윤동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담자리꽃나무는 장미과의 상록 활엽 소관목으로 고산 식물의 하나이다.
줄기는 길며, 잎은 원형 또는 넓은 타원형이고 뒷면에는 솜털이 많다.
여름에 흰색 또는 노르스름한 꽃이 긴 꽃줄기 끝에 하나씩 핀다.
높은 산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일본, 북아메리카,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 합니다.
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
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참회록
파아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 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사나이가 가엾어 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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