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문단 구성에 대하여 / 박광정


수필이라 하여 글줄을 바꾸고 문단 나누기를 필자의 자의에만 맡길 수는 없다.
더구나 처음부터 줄이나 문단을 바꾸고 나눔이 없이 잇따라 써서도 안 될 것이다.
사실 문단을 나누지 않은 잇따른 글쓰기는 고대 소설에서 시작하여 신소설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장의 전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연속적으로 글을 적어 놓으면 읽는 사람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
문장 하나하나를 다 읽지 않으면 요지를 알 수 없고, 어디에서 쉬어야 할는지 막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 글은 몇 문단으로 나누면 독자가 읽기도 편하고 내용을 이해하기에도 수월하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문단을 나눌 것인가.

통일된 한 생각으로 씌어진 문장들만으로 모듬을 만들어 놓으면 읽는 사람에게 편리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제각기 다른 생각, 즉 각 주제를 가진 모듬으로 묶어 문단으로 나누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문단을 이루는 문장들은 그 문단이 나타내려는 주제(소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만일 문단 주제와 관련이 없거나 먼 문장이 있다면 잘된 글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문단의 소주제를 가장 핵심적으로 들어낸 문장을 주제문, 화제문(topic sentence), 또는 문단 주제문이라 한다.
그러니까 한 문단은 주제문과 이 주제문을 뒷받침하는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 예문(1)은 소주제문과 뒷받침 문장들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완결된 문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예문(2)는 소주제문과 뒷받침 문장이 긴밀하지 못하여 잘 짜여진 문단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예문(1)

우리 집 아침은 분주하다. 우리 집 식구 모두는 매일 동네 뒷산에 있는 약수터에 가서 운동을 하고 약수를 받아 온다.
집에 와서 아버지와 나는 아침 청소를 하고, 누나는 어머니를 도와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아버지는 출근하시고, 누나와 나는 학교로 향한다.


예문(2)

우리 집의 아침은 분주하다.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약수터에서 운동하는 것은 건강에 이롭다.
건강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므로 잘 지켜야 한다.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을 보면, 안쓰러워진다.

소주제문이 반드시 겉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 속에 용해되어 있을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묘사적인 글에서는 주제문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글 전체의 내용이나 인상을 통하여 주제를 암시하게 된다.
위의 예문(1)은 소주제문(우리 집 아침은 분주하다.)이 겉으로 드러난 경우이고,
다음 예문 (3)은 소주제문(노랑이는 영리하다.)이 내용에 용해된 경우이다.


예문(3)]

한번은 어느 초심자가 두륜산을 등반하는데 이 노랑이가 따라오자
“저놈의 개가 길을 잃으려고 여기까지 오나.”하면서 자꾸 노랑이를 쫓아 보냈단다.
그러나 노랑이는 마냥 뒤따라오다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짖고는 따라오지 않고
산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냥 거기 서서 짖더라는 것이다.
그 때 손님은 길을 잃어 밤늦게야 완도 쪽으로 내려왔고,
시무룩이 돌아온 노랑이는 자기가 끝가지 안내하지 못한 그 손님이 여관으로 짐 찾으러 되돌아온 다음에야 펄펄 뛰었단다.


문단이 완결된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져야 한다.


첫째, 통일성의 원리


각 문단의 소주제문을 뒷받침하는 문장들은 철저하게 소주제문을 뒷받침해야 한다.
소주제문이 없을 경우에는 문단을 이루는 문장들이 하나의 통일된 생각으로 모아져야 한다.

다음 예문(4)에서 -친 부분은 소주제문 ‘가을은 서글픈 계절이다.’와 엇갈리므로 삭제해야 필자의 생각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예문(4)

가을은 서글픈 계절이다. 시들어 가는 풀밭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서,
유리알처럼 파아랗게 갠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까닭 없이 서글퍼지면서 눈시울이 눈물에 어리어 지는 것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감정이다 선돌 밑에서 밤을 새워가며 안타까이 울어대는 구슬픈 울음소리며,
불을 끄고 누웠을 때에 창호지에 고요히 흘러넘치는 푸른 달빛이며,
산들바람이 문풍지를 울릴 때마다 우수수 나뭇잎 떨어지는 서글픈 소리며-
가을빛과 가을 소리치고 어느 것 하나 서글프고 애달프지 아니한 것이 없다.
가을을 흔히 ‘열매의 계절’이니 ‘수확의 계절’이니 하지마는 가을은 역시 서글프고 애달픈 계절이다.


둘째 연결성의 원리

문단을 구성하는 문장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을 시간적 순서, 공간적 순서, 논리적 순서에 맞게 배열해야 한다.
시간적 순서는, 오늘에서 어제, 그제의 순서거나, 그제에서 어제, 오늘의 순서여야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수월하다.
공간적 순서는 가까이에서 먼 데로 혹은 먼 데에서부터 가까이로,
오른 쪽에서 왼 쪽으로 등과 같이 일정한 방향을 잡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또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해하기 수월하다.
글감이 서로 인과 관계에 있을 때에는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것이 좋다.
인과 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순리적으로 배열하면 된다.

시간적 순서에 따른 배열은 주로 사건의 진행 과정을 서술할 때 사용하고,
공간적 순서에 따른 배열은 자연 풍경이나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릴 때,
그리고 논리적 순서에 따른 배열은 글의 내용을 논리적 관계로 연결하는 방법으로,
앞 문단의 내용을 보충하여 설명하거나, 구체적 예를 들거나, 원인과 결과를 밝히거나,
근거를 들거나,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거나, 내용을 보충하거나 전환하는 등이 이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문장이 긴밀하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지시어나 접속어를 사용하여 연결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문단과 문단을 연결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음 예문(5)는 제시문단(첫 문장)과 근거를 설명하는 문단으로 긴밀히 이어져 있다.


예문(5)

우리는 학문을 배우고 연구한다.

배우고 연구하는 데에는 실지로 경험해 보는 것, 몸소 행동하여 보는 것이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인류가 오랜 세월을 두고 경험한 것을 빼놓지 않고 되풀이 해볼 수는 없다.
우리는 선인들의 고귀한 경험의 축적에 의하여 획득한 문화유산을 손쉽게 계승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시일에 선인과 동등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동시에 다시금 그의 발전도 꾀할 수 있다.
이처럼 선배들이 도달한 수준까지 따라가서, 그를 극복하여 새로운 향상의 길을 트려는 노력이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다음 예문(6)은 원리와 적용으로 연결된 문단이다.
이는 원리-적용, 주장-증명, 일반-특수로 연결된 문단이라 할 수도 있다.

예문(6)

평화로운 시대에 있어서 시인의 존재는 가장 비싼 문화의 장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이 처해있는 국가가 비운에 빠졌을 때에 있어서 시인은 비싼 문화의 장식을 떠나,
혹은 예언자로 또는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선구자적 지위에 놓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제 1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군의 가혹한 압제 하에 있었던 벨기에 인에게 있어서 베르하렌은 조국의 한 시인 영(靈)으로 추앙되었다.


다음 예문(7)은 이유와 결과로 긴밀히 연결된 문단이다.

예문(7)

하나의 현상이라고 해도 일정한 순서로 진행되지 않는 한 예술적 감동이 작가의 기대대로 달성되지 못한다.

따라서 독자의 감동 효과를 위해선 작가가 훨씬 인상적인 표현을 시도해야 한다는 귀결을 얻게 된다.


셋째, 명확성의 원리

하나의 문단은 소주제를 명확히 나타내야한다.
이는 소주제문을 명기하면 된다.{
위의 예문(1)과 예문(4)}. 소주제문이 없을 경우에는 문단을 이루는 문장들이 소주제를 분명히 나타내 주어야 한다. {위의 예문(3)}.

문장 하나하나에 대하여도 세심한 주의를 기우려야함은 물론이나,
기분에 따라 행(行)을 바꾸거나 문단을 나누는 일이 없어야 수필을 쓰는 바른 자세라 하겠다.

출처 :새벽문학관 (동해로 가는 동행) 원문보기 글쓴이 : 게시판지기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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