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하며 버린 소파는 빨래하면 거기다 올려놓고 빨래 개서 놔두는 흉물 단지로 변한 지 오래됐다. 도배 색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과감히 버렸다. 부피가 좀 더 작은 그레이 색상으로 주문했다. 홈쇼핑마다 들어가 금액을 체크하고 제일 저렴한 곳으로 낙점했다. 코로나 여파로 택배 물량이 늘어 언제나 오려나 감감무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젊은 시절 방석에 쿠션에 마음 쓰던 집안 가꾸기는 사라지고 잿빛이 드리워진 노년이 왔다. 무언가에 정신 팔려 세월은 흘러가고 건강만 생각하는 말년이 왔다. 푸르게 살자고 붉고 멋지게 떨어지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회한에 젖기엔 너무 이르다. 중후한 색상인 재색이 좋아진 것도 나이 탓일까. 방석도 재색으로 주문하고 쿠션은 명화로 주문했다. 고흐와 모네가 크림트가 성큼 들어온 날 젊은이처럼 배시시 웃었다. 순간 젊어지는듯 숨겨뒀던 감각이 살아난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1853-1890)는 네덜란드에 태어나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 참고 : 빈센트 반 고흐는 어떤 화가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테라스 작품으로 매우 유명한데요,
특히 해바라기는 고흐의 꽃으로 불릴 만큼 고흐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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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해바라기
고흐는 생전에 총 12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에서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라는 주제를 기준으로 총 7점의 해바라기 그림이 있는데요,
7점 모두 구도는 거의 똑같습니다만 해바라기의 갯수가 3개, 12개, 15개로 차이점이 있습니다. 1점은 소실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그림은 6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및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바라기 작품으로는 바로 아래에 소개할 해바라기 15 송이 그림인데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중 하나인 이 해바라기 작품에 대해 해설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해바라기 그림
세번째 해바라기 그림
가장 유명한 15송이 해바라기 그림
해바라기 15송이
현재는 해바라기 = 고흐가 떠오를 정도이지만, 실제 고흐가 해바라가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 때는 1888년부터 89년까지의 약 1년 남짓한 시기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아를에 거주할때 그린 작품인데요, 고흐는 아를과 생레미에 거주할때 총 7점의 해바라기 작품을 그렸습니다.
아를에 거주할 당시 고흐는 동료 화가들과 공동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고흐의 또 다른 작품으로 남아있는 ‘노란 집’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2차 대전으로 소실되기전 촬영된 노란집의 실제 모습.
출처 : 반고흐 박물관
고흐가 그린 노란집의 모습.
해바라기 15송이 그림의 배경이 노란색이 이유는 바로 이 노란 집을 배경으로 그렸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설입니다.
그림의 집은 상당히 커 보이지만, 사실 매우 협소하고 작은 집이었습니다.
고흐가 사는 방에는 동생 태오가 보내 준 돈으로 구비한 최소한의 가구만 갖춰진 상태였는데요,
고흐는 노란 집을 기준으로 일종의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파리에 있는 다른 화가들을 초대하는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고흐와 고갱
그 중에는 친구이자 차후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화가인 ‘폴 고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고갱으로부터 아를로 오겠다는 회신을 받은 고흐는 기뻐서하면서 허름한 방을 꾸미기 위해 그렸던 작품이 바로 이 해바라기 15송이 그림입니다.
이는 실제로 고갱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아래와 같이 적혀져 있습니다.
고갱과 함께 아틀리에에서 살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방의 장식을 만들고 싶다.
그것도 큰 해바라기만으로.
고흐와 고갱은 서로의 예술에 영향을 미쳤으나, 둘의 동행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2개월 후 고흐와 고갱은 큰 싸움을 한 끝에 고갱은 도망치듯 파리로 떠나게되고, 이후 다른 기사에서 설명할 고흐가 스스로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고갱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그림의 제작 시기장 실제로 그림을 그리고있는 고흐가 아닌, 상상화라 받아들여집니다.
이후에 고갱은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내 ‘고흐의 그 해바라기 그림을 원한다’고 표현을 할 만큼 고흐의 작품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임은 틀림없습니다.
고흐는 왜 하필 해바라기를 그렸을까?
인테리어 용도로 그리게 되었다면 대체 왜 하필 고흐는 “해바라기”를 많이 그리게 되었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해바라기를 그리게 된 이유에 따라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우선, 당시 고흐가 거주하던 프랑스 아를의 상황은 기름을 얻기 위해 해바리기를 많이 길렀습니다.
고흐의 입장에서 본다면 주변에서 가장 흔하고, 친근한 꽃이 해바라기였기 때문에 해바라기 꽃을 그리게 되었다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 집니다.
그럼 여기에서 왜 이렇게 비슷한 해바라기 꽃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보통 대중에는 아래의 설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첫째는 동료 화가들과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료를 암시한 것이다.
둘째는 방을 꾸밀 인테리어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셋째는 단지 그림에 관한 연습을 하기 위해서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은 유화를 두껍게 칠해 해바라기의 강한 생명력과 불륨감을 표현하였으며, 동시대 작품들과 비교화여 조각같은 입체감을 표현한 걸작입니다.
대부분 노란색조로 그려졌지만, 화분에는 노란색과 대비되는 파란색을 사용해 자신의 서명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고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현대에 남겨져 있는 가장 유명한 해바라기 그림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