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 헤맨 독수리·어미 잃은 너구리…다시 자연으로

송고시간2022-03-19 08:30

 
 

인천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작년 동물 508마리 구조

치료·재활 거쳐 방생…"야생성 유지하려 접촉 최소화"

어미 잃고 구조된 새끼 흰뺨검둥오리

[인천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김상연 기자 = "의외로 정말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우리 일상 가까이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서 만난 수의연구사 김형준(33)씨는 능숙하게 동물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집중 치료실에 있던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는 비행 중 투명 유리창에 부딪혀 머리 부위를 크게 다쳤다고 했다. 옆자리 멧비둘기는 먹이를 구하지 못해 탈진 상태로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구조됐다.

2018년 3월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가 문을 연 이후 상처를 입거나 위기에 처한 지역 내 야생동물들은 이곳에서 대부분 보호·관리를 받고 있다.

어미를 잃고 미아가 된 새끼 너구리와 흰뺨검둥오리를 비롯해 굶주린 상태로 탈진한 솔부엉이와 말똥가리, 골절상을 입은 저어새 등도 구조돼 보호와 치료를 받은 뒤 자연으로 돌아갔다.

이들 동물이 치료와 재활훈련을 거쳐 자연으로 복귀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짧게는 수일부터 길게는 수개월까지 건강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

미아로 구조된 새끼 너구리

[인천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기준으로 이곳 센터에 가장 오랫동안 머문 동물은 천연기념물인 독수리였다. 지난해 1월 29일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에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쓰러져 있는 독수리를 한 시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김씨는 "처음 구조됐을 때 맹수가 사람 품에 안겨서 가만히 있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며 "농약 중독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독수리는 회생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 끝에 홀로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하지만 그 무렵 겨울 철새인 독수리 무리는 이미 떠나버려 방생 시기가 12월로 미뤄지며 기나긴 계류장 생활이 시작됐다.

직원들은 겨울 철새인 독수리가 여름을 무사히 나도록 통기성이 좋은 집을 지어주고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열기를 식혔다.

어느덧 겨울을 맞아 독수리 무리가 강화군 교동면에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 독수리는 구조된 지 11개월 만인 12월 20일 힘찬 날갯짓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갔다.

김씨는 "독수리가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매일 생닭을 1마리씩 줬으니 닭 수백마리는 먹고 떠난 셈"이라며 웃었다.

농약에 중독된 독수리(왼쪽)와 치료 후 방생 모습

[인천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곳 센터에는 수의직 공무원 4명을 포함해 모두 6∼8명의 직원이 야생동물을 위해 일하고 있다. 막내 수의연구사인 김씨는 인천보건환경연구원에서 4년간 가축방역 업무를 맡다가 지난해 자리를 옮겼다.

동물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른 직원들이지만, 야생동물에게는 일부러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 방생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야생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쓰다듬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먹이를 주거나 치료할 때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고 있다"며 "반려동물과 다르게 이들이 돌아갈 곳은 자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센터는 작년 모두 508마리의 야생동물을 구조해 치료·재활을 거쳐 232마리(45.7%)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이는 전국 평균(37.7%)보다 8% 포인트 높은 비율이다.

특히 구조한 동물 중에는 저어새와 수리부엉이 등 보존 가치가 높은 천연기념물 14종 110마리가 포함됐으며 이 중 71마리(64.5%)가 무사히 방생됐다.

탈진 상태로 구조된 솔부엉이

[인천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센터는 야생동물의 생명을 위협하는 해양쓰레기와 일회용품의 위험성을 지속해서 알리는 한편, 새들의 유리창 충돌 방지를 위한 캠페인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례로 '5x10 규칙'은 새들이 높이 5㎝·폭 10㎝ 공간에서는 비행을 시도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충돌 방지용 스티커 등을 붙이는 내용이다.

박진수 센터장은 19일 "시민들과 야생동물이 공존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구조·관리 활동과 생태 교육에 앞장서겠다"며 "작은 실천으로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만큼 야생동물 보호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goodluck@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2/03/19 08: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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