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을 위한 서시
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의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김춘수 시인에 대하여
1922년 경남 충무 출생. 경기중학교를 거쳐 니혼대학 예술과에 입학했으나 1942년 불경죄로 일본경찰에 구금되어 있다가 퇴학처분을 받고 귀국했다. 충무에서 유치환, 윤이상, 전혁림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1948년 대구에서 동인지 ‘죽순’에 시 <온실>을 발표하고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출간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경북대, 영남대 교수를 재직했으며, 제11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시인협회상, 대산문학상, 예술원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4년 병환으로 사망했다.
꽃(김춘수)과 꽃을 위한 서시(김춘수)의 작품 설명
[존재의 본질 인식에 대한 소망]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는 인식의 주체로서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소망을 노래한 시로, '꽃'을 제재로 존재의 인식에 대한 내용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꽃’과 유사하다. 하지만 ‘꽃’에서는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존재의 본질을 인식한 데 반해, '꽃을 위한 서시'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꽃(김춘수)과 꽃을 위한 서시(김춘수)의 핵심 정리
꽃 | 꽃을 위한 서시 |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관념적, 주지적, 상징적 | 관념적, 주지적, 상징적 |
제재 | 꽃 | 꽃 |
주제 |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 ① 꽃의 참모습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② 존재의 본질 인식에의 염원 |
특징 | ① 간절한 어조를 사용하여 소망을 드러냄. ② 존재의 의미를 점층적으로 심화, 확대함. ③ 사물에 대한 인식론과 존재론을 배경으로 함. |
①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을 본질을 추구함. ② 심오한 철학적 문제를 구체적인 시어를 통해 구상화함. |
꽃(김춘수)과 꽃을 위한 서시(김춘수)의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꽃’을 소재로 하여 사물과 그 이름 및 의미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사물의 존재론적 의미를 추구하고, 존재들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소망하고 있다..
이 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나’와 ‘그’와의 관계이다. 둘의 관계는 처음에는 무의미한 관계였다가 상호 인식의 과정을 거쳐 서로에게 ‘꽃’이라는 의미 있는 존재로 변모하고, 마침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나’만 중심이 되거나 ‘너’만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합일(合一)되어 서로가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되는 상호 주체적인 관계를 맺을 때 본질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 시는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을 노래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