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목(連理木)

                          / 조 숙



시댁 마루에 앉아 건너편에 있는 과수원을 바라본다. 가을걷이 끝낸 들녘을 넘어 사과나무 열매가 내 눈길과 마주치자 빨갛게 웃는다. 태양과 태풍을 인내하고 실하게 살 오른 사과는 저리도 밀도 높게 달려있다. 몇 해 전 시어머님의 거친 손을 빌어 논에서 과수원으로 거듭난 곳이다 자갈논을 뒤집어 과수원을 만들겠다고 어머님이 말했을 때 자식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도회지살이가 무슨 대수라고 입버릇처럼 '바쁘다'고 하면서 몸은커녕 마음조차도 ‘사서고생' 이라고 후원하지 않던 자식들이었다. 쓴 입술만 보탰던 자식들이 지금은 둘러 앉아 ’달고나 맛나고나' 농익은 과육을 씹는다. 고랑마다 어머님 골타고 흐르던 땀이 자양분되어 푸석한 땅심을 녹녹히 만들어 놓은 탓이리라

봄볕이 추임새를 넣을 때마다 사과나무 겨드랑에서 사과꽃이 돋는다.봄이오는 소리는 봄을 향해 귀를 열어 놓은 것들이 먼저 듣는다. 겨울채비로 단단히 여며 놓았던 창호지 속에서 동면하던 꽃잎이 기지개를 켜고, 헛간구석에서 무료하던 어머님의 노란 장화도 무릎을 세운다. 곁눈질하면서 살짝살짝 벙글던 사과꽃이 뭉게뭉게 꽃구름으로 피고 마침내 꽃잔치가 벌어지면 어머님은 전화를 하신다. ‘댕겨 가그라’ 무뚝뚝한 어머님의 가장 살가운 표현이다. 손자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꽃 좋아하는 며느리에게 이토록 고운 꽃잔치를 보여주고 싶기도 한 것이다.

꽃은 정작 어머님이 더 좋아하셨는지도 모른다. 과수원을 일구고 첫 꽃을 피운 때였다. 시댁에서의 잠자리가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아귀가 맞지 않는 문틈으로 솔솔 새어들어 오는 바람에 코끝이 시렸고, 뒤란 대숲에서 바람 이는 소리에 잠들기 힘들었서 뒤척거리다 그만 마루로 나왔다가 깜짝 놀랐다. 마루 끝에 오도카니 어머님 앉아 있었다. 환한 달빛에 투영된 어머님의 옆얼굴은 새댁같이 수줍어 보였다. ‘아가 이리 와서 앉거라’ 어머님은 과수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직이 말했다. 사과꽃이 만발한 과수원은 눈이 내린 듯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 위로 달빛이 켜켜이 배어들고 있었다. ‘참 좋구나’ ‘참 좋다’ 어머님은 연신 그렇게 되뇌는 것이었다. 장부처럼 드세기만 하던 어머님에게서 애잔한 여심을 엿본 날이었다. 어머님과 마루에 앉아 달빛에 젖는 사과 꽃을 오래오래 바라본 유정한 봄밤이었다.

한량같이 밖으로만 떠도는 남편, 조롱조롱한 다섯 아이들과 호랑이 시부모를 수발하며 과수원까지 돌보는 일은 어머니 가슴에 숯덩이를 얹고 살아가는 날들이었다. 고된 생활은 자연히 입이 굳고 마음도 단단해져서 구부리기보다 부러지기가 쉬웠던 모양이다. 어머님의 언어는 투박하기만 하다. 허투루 말을 내뱉지도 않지만, 하고 싶은 말들을 모아두었다가 한 번에 뭉뚱그려서 툭 내뱉고 만다. 속내는 그렇지 않다지만 여리고 어설픈 며느리는 가슴이 베이기 일쑤여서 시댁 다녀오는 일은 내게도 가슴에 돌덩이를 얹는 일이었다.

어머님은 무장아찌 하나 달랑 놓고 밥 한 그릇 달게 비우는 담백한 사람이다. 고단한 육신을 내려놓는 일도 그처럼 담백했다. 매일 새벽 벗 삼았던 미명의 배웅만 허락했다. 건너편 아짐이 “영천댁아 자노? 웬 늦잠인감 ? 하며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 때 벌써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더라고 했다 입버릇처럼 잠든 듯이 고스란히.... 주인을 잃은 과수원은 휘청거렸다. 과수원을 돌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계절 바뀔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는 당숙모의 성화를 들어야 했는데, 올해는 친척뻘 되는 아재가 맡았다.

과수원에 내려놓았던 시선을 거두어 맞은편 느티나무를 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 느티나무 아래에 서면 나는 언제나 두 번 인사를 한다. 첫 번째 인사는 아버님을 향한 문안이고, 두 번째는 느티나무의 오래도록 안녕을 위해서이다. ‘여기 수령700년에 이르도록 이 자리 지켜선 느티여 그대 푸른 그늘에 안길 때면 푸른 꿈 푸른 가슴 서로 얽혀서 만년을 가도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인연 맺으려 하노라!’ 누군가 새 석판에 새겨놓은 아름다운 구절은 읽노라면 정말로 이 느티나무와 아름다운 인연의 가지를 늘려가고 싶다. 느티나무의 나이테는 이 마을 사람들의 전설이다.

지금은 느티나무 주변으로 벤치도 만들어 놓고, 꽃도 심어 멋진 쉼터를 만들어 놓았지만, 예전에 그곳은 대나무 평상 아래 늘 아버님의 흰 고무신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아버님은 안경 낀 지식 청년으로 이 동네의 자랑이었다고 한다. 남보다 앞선 의식 탓에 겪어야 했던 방황의 세월은 너무도 길었었나보다. 아버님은 언제나 ‘부재중(不在中)’ 이었다. 서울에 작은 각시가 있다고도 하고 노름판에서 전답을 날렸다고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들에게 보여 지는 것일 뿐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버님은 언제나 여집합을 이루고 계셨다. 집안의 대소사를 이야기 할 때 언제나 ‘니 아버지 오시면’ 하며 아버님의 자리를 남겨두었던 것이다.

평생 타지로만 떠돌다 남루해진 영혼만 가지고 내려왔어도 묵묵히 받아준 건 이 느티나무였다. 고향에 돌아온 후 아버님은 늘 느티나무 아래 있었다. 아버님의 푸른 꿈 푸른 가슴도 여기에 내려 놓으셨을까?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먼눈으로 바라보면 느티나무 아래 아버님의 흰 적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님의 시선은 언제나 먼 곳을 향해 있다. 쇠잔한 육신은 느티나무 아래 붙박아 두고 자유로운 마음을 멀리멀리 보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평상 아래 반듯이 벗어놓은 흰 고무신은 그 빛깔이 너무 희어서 시골의 진흙땅과는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버님은 어른들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에게까지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셨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민망해하며 말씀을 낮추라고 해도 ‘ 존대해서 빰 맞는 법 없다’ 고 짧게 한마디 할 뿐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아버님을 뵌 날도 느티나무 아래서이다. 이미 병색이 깊은 얼굴이었는데, 자꾸 달아나려는 눈빛을 겨우 붙잡아 나에게 맞추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멈추고 싶어도 의지대로 제동 걸리지 않는 해소기침처럼 아버님의 삶도 쿨럭거렸다. 아버님에게 있어서 ‘아내’는 탯줄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어머님 떠난 뒤, 자주 가물거리던 의식을 끈을 놔 버리고 아내의 탯줄을 잡기로 작정한 것처럼 곧장 어머님의 뒤를 따라갔다.

 이제 떠나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으로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사신 두 분이 내 시선 속으로 들어와 일체를 이룬다. 빈가지만 남은 겨울과수원에 삭풍이 불면, 아버님의 느티나무를 건너오면서 데워진 바람이 사과나무를 흔들고 지나간다. 어머님의 과수원이 꽃을 피우느라 꿈틀거리면, 아버님의 느티나무도 응원의 초록을 내민다.

퇴적된 시간이 거름 되어 사과와 느티나무는 비로소 연리목(連理木)이 된 것이다.

마루에 앉은 채 나는 오랜만에 인사를 올린다. 두 분 잘 계시지요?

 

*연리목: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한다.


출처:산춘문예공모나라http://cafe.daum.net/chinaunbag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메모 : 연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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