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耳鳴)/피 귀 자

 

찌익-찍 찌익-찍 바닥을 긁는 듯한 저 소리의 근원은 무엇일까.

규칙적인 것도 아니고 잊을 만하면 들리는 찌익-찍 찌익-찍 북핵(北核).쿵쾅대는 저 소리.바람인가.

바람인가 보다.

바람이 일어선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는 바람만 존재하는 듯 전깃줄이 윙윙 운다.

아니, 보일러가 돈다.

그도 아니면 냉장고 모터 소리인가.

보리를 잡기 위해 집안을 헤집지만 고요한 밤, 식구는 잠들었고 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등을 붙이고 눕자 하루치 피로가 몰려왔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긴다.

꿈이런가.

바람이 귓속으로 휘감긴다.

들릴 듯 말 듯 은밀하던 소리가 점점 커진다.

성폭력. 다시 벌떡 일어나 집안에 소리가 날만한 곳을 찾아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비슷한 소리는 없다.

누웠다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자 잠은 저만치 달아나 버리고 시시각각 예민한 촉수가 돋아난다.

수많은 도르래가 돌아간다.

하늘이 암갈색으로 물들고 두꺼운 구름이 몰려온다.

모래먼지가 입안에서 서걱거리고 숨이 턱턱 막힌다.

폭우에 들풀이 일어나듯, 어둠을 삼킨 검은 파도가 밀려온 듯 갑자기 강렬한 폭발음이 귀를 때린다.

고막이 찢어질 듯 거대한 소리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선다.

총기난사.

순간 거대한 소리는 숨어버리고 드러누우면 또다시 소리가 소리를 부르고 소리에 갇혀 누웠다 일어서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우주 저편에서 메아리치며 다가오는 지진 해일의 소리가 이럴까.

두려움에 휩싸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이 거대한 소리의 근원이 바로 귓속이라니!

7.9⁰ 지진. 몸이 산화하여 산산조각이 나버릴 듯 자지러졌다.

바닥이 흔들흔들 움직인다.

믿을 수가 없다.

귓속에서 이런 소리가 나다니.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와 귓바퀴를 움켜쥐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몸부림을 쳤다.

어쩌면 좋으랴.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온몸에 비늘이 돋고 고통스러운 전율이 등줄기를 가로지른다.

끝없는 넓이로 서 있는 벽 앞에서 벽이 흡수된다.

넓디넓던 세상이 대통 속처럼 좁아진 듯 귀가 먹먹하다.

귀머거리가 된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혼란 속에서 마음은 바람에 너덜거리는 헝겊조각.

머리는 깨질 듯 아파오고 잠자리는 난장판이다.

살인.

수없이 병원 문을 두드렸다.

산뜻한 이유는 어디에서도 밝혀지지 않는다.

늙어가면서도 노화의 일종일 수 있다는 말은 인정하기가 싫은 이 아이러니.

일상의 소리를 듣고 생활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노화라니.

이런 종류의 노화도 있다는 말인가.

이상기후.

바쁜 낮에는 자취 없이 사라졌다가 등을 붙이는 순간 찾아오는 불청객 때문에 밤이 두렵고 괴롭다.

소멸하든가 파괴하는 것 외엔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은 절망감마저 앞선다.

햇빛 따사한 계절이 다시 돌아올까.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고 급기야 사람이 상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테러.

참다봇해 인터폰을 들자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윗집 아주머니에게 무슨 말을 보태랴.

터져 나오려는 말을 삼키고 만다.

형제를 키우다 보니 뛰어다니고 의자를 끌어당기며 장난치는 소리였나 보다.

예측할 수 없는 불협화음 사이에서 남자애들의 자지러지는 괴성까지 코러스를 넣는다.

이명(耳鳴)이 이명(異鳴)일까.

이명(異鳴)이 이명(耳鳴)일까.

이명의 고통으로 충혈된 눈 위로 아침이 밝아온다.

 

[출처] (좋은 수필) 이명(耳鳴)(피귀자)|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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