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相思花) / 구재기(丘在期) 내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 지나는 바람과 마주하여 나뭇잎 하나 흔들리고 // 네 보이지 않는 모습에 내 가슴 온통 흔들리어 // 네 또한 흔들리리라는 착각에 오늘도 나는 너를 생각할 뿐// 정말로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은 내 가슴속의 날 지우는 것이다 상사화(相思花) / 홍해리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자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 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 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곤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상사화 / 나호열 하행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회덕인터체인지에 서 호남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논산, 익산, 고개 숙인 만경 강 슬쩍 곁눈질하고 김제나 태인 그렇지 않으면 정읍에 서 고창, 영광 쪽으로 빠져 이십칠 킬로 선운사 앞마당 사랑, 사랑 말들 많지만 전국 사랑을 볼 수 있다기에 동백꽃 지고 잎만 푸르른 날을 골랐네 봄이면 수줍은 듯 가녀린 이파리 몇 촉 올라오고 시들 고 한참 뒤 그자리에 더 수줍은 꽃이 피어 무엇이 몸이 고 마음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데 잎 지고 꽃 진 자리 서 성거리는 한여름 늘어진 두 그림자 우리가 그런 사랑 아 닌가 정말 아닌가 선운사 상사화 / 정호승 선운사 동백꽃은 너무 바빠 보러 가지 못하고 선운사 상사화는 보러 갔더니 사랑했던 그 여자가 앞질러가네 그 여자 한번씩 뒤돌아볼 때마다 상사화가 따라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나도 얼른 돌아서서 나를 숨겼네 상사화 / 이명수 속내를 드러내지 말라고 아리고 쓰려도 감추고 살라고 귓속말로 타일렀건만 배롱나무 꽃 진 자리 붉은 속살 들키고 마는 걸 어찌하랴 죽어도 끝내 병이 될 바에야 살아서 한철 주체할 수 없는 화냥기로 제살 태워 몸이라도 풀고 가야지 꽃무릇 / 박종영 꽃무릇 너 상사화 흉내 내듯 온통 붉은 울음으로 그리움이다 // 그냥 임을 가늠하고 솟아올라도 꽃대는 푸른 잎 감추고 너를 이별하고 // 네 생애 단 한 번도 찬란한 얼굴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 슬픔으로 붉은 눈물 뚝뚝 지상에 흩뿌려 한이 되것다 // 오늘도 강산은 핏빛이네 // 하늘빛 싸리꽃 너머 흔들리는 억새 춤을 불타는 네 가슴에 안겨주랴? 석산꽃 / 박형준 한 몸 속에서 피어도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무덤가에 군락을 이룬다 // 당신이 죽고 난 뒤 핏줄이 푸른 이유를 알 것 같다 초가을 당신의 무덤가에 석산꽃이 가득 피어 있다 ― 나는 핏줄처럼 당신의 몸에서 나온 잎사귀 // 죽어서도 당신은 붉디붉은 잇몸으로 나를 먹여 살린다 석산꽃 하염없이 꺾는다 꽃다발을 만들어주려고 꽃이 된 당신을 만나려고 시(詩)를 찾아서 / 정희성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시가 무엇인지 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깊이 생각해볼 틈도 가지지 못한 채 헤매어 여기까지 왔다 경기도 양주군 회암사엔 절 없이 절터만 남아 있고 강원도 어성전 명주사에는 절은 있어도 시는 보이지 않았다 한여름 뜨락에 발돋움한 상사화 꽃대궁만 있고 잎은 보이지 않았다 한 줄기에 나서도 잎이 꽃을 만나지 못하고 꽃이 잎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아마도 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인 게라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 끝없이 저잣거리 걷고 있을 우바이 그 고운 사람을 생각했다 슬픔의 힘 / 권경인 남은 부분은 생략이다 저 물가, 상사화 숨막히게 져내려도 한 번 건넌 물엔 다시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널 만나면 너를 잃고 그를 찾으면 이미 그는 없으니 십일월에 떠난 자 십일월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 번뇌는 때로 황홀하여서 아주 가끔 꿈속에서 너를 만난다 상처로 온통 제 몸 가리고 서 있어도 속이 아픈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 오래 그리웠다 // 산을 오르면서 누구는 영원을 보고 누구는 순간을 보지만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사람이 평생을 쏟아부어도 이루지 못한 평화를 온몸으로 말하는 나무와 풀꽃같이 그리운 것이 많아도 병들지 않은 무욕의 정신이여 // 그때 너는 말하리라 고통이라 이름한 지상의 모든 일들은 해골 속 먼지보다 가볍고 속세의 안식보다 더한 통속 없으니 뼈아픈 사랑 없이는 어떤 하늘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 기다리지 않아도 마침내 밤이 오고 마지막 새소리 떨어져내릴 때 상사화 / 이해인 아직 한 번도 당신을 직접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어긋나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 내 분홍빛 애틋한 사랑은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오랜 세월 침묵 속에서 나는 당신에게 말하는 법을 배웠고 어둠 속에서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익혀왔습니다 죽어서라도 꼭 당신을 만나야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 작은 위로 / 이해인 잔디밭에 쓰러진 분홍색 상사화를 보며 혼자서 울었어요// 쓰러진 꽃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하늘을 봅니다// 비에 젖은 꽃들도 위로해주시구요 아름다운 죄가 많아 가엾은 사람들도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 보고 싶은 하느님 오늘은 하루 종일 꼼짝을 못하겠으니// 어서 저를 일으켜주십시오 지혜의 웃음으로 저를 적셔주십시오 무인도 / 도종환 너의 운명은 네 성격 탓이었으리라 육지의 발끝에라도 달려가 붙어 있거나 아니면 물 속으로 차라리 잠겨 버릴 일이지 이만큼 거리를 두고 외따로 떨어져 댓잎으로 바람 향해 울을 치고 아침바다같은 것들만 네게 오게 하는 것이 오지 못하게 한 것들로 한없이 외롭게 사는 것이// 너의 운명은 네 고집 탓이었으리라 떠나온 곳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버리거나 아니면 네 기슭에 인가 몇 채라도 지어 고즈넉한 사람 한둘쯤은 살게 할 일이지 제 깊은 곳에 상사화 몇 포기 자라게 하고 저녁마다 언덕 위에 왕달맞이꽃 키우면서도 바위너설이 물살에 다 문들어지도록 홀로 사는 것이// 부드러운 네 고집 탓이었으리라 댓잎같은 네 성격 탓이었으리라
출처 : 청사초롱문학회
글쓴이 : 오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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