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시인 |
감나무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 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 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 보는 것이다
해설/정끝별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을 빌려 말하자면, 좀 ‘지랄 같은 성
깔’ 과 ‘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개구쟁이의 웃음’과, 그
리고 ‘시적 허기증’이라 할 만한 왕성한 창작 욕구가 가장 그
답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재무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고향과 유년에의 기억, 도시와 문명의피로 등 자신의
삶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퇴고할 필요
가 별로 없는 완전한 모습의 시가 초고부터 쓰인 경우 좋은
시가 많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감나무」야말로 단
숨에 쓰인 시임에 틀림없다.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산다. 흰 보석 같은 감꽃과 달착지근했던 꽃
맛, 새파란 감잎과 툭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 내는 그
늘, 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 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
콤한 맛…….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한 풍경이다.
십오 년 동안을, 주인이 도망치듯 더난 빈집에서 꽃을 내
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쓸쓸하다. 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
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 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 한 기다림을 다 살았을 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
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 기울이는 것이리라. 날렵하게 포착해
앤 이 짧은 시의 여백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
한 가족의 곡절 많은 삶이 있고, 녹록치 않았을 도시 살이가
있고, 무작정의 세월이 있고, 겨절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고 인정이 있고 섭리가 있다.
“초겨울 인적 드문 숲 속/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위태위
태한 빨간 슬픔의 홍시/ 하나의 마음으로 기다리”(「기다림」)
는 이 감나무는 기다림을 완성시켜 줄 ‘큰 잎 가진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고향이란 이런 감나무처럼 애틋하게 기
다려 주는 곳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감나무로 통하는
것이다.
새순이 돋고 감꽃이 지고 나면, 감이 열리고 감잎이 물들
것이다. 그리고 까치밥 하나 오래 맺혀 있으리라. 고향 빈집
에 남겨 두고 온 저 감나무는 그렇게 삼십 년을 알콩달콩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 십오 년에 또 십오 년은 더, 피붙이처럼
그리워할 것이다. 속을 바짝바짝 태우며 그리 오래 기다렸던
감나무니 그 감은 또 오죽 달 것인가.
목련꽃
내 몸 둥그렇게 구부려
그대 무명 치마 속으로
굴려놓고 봄 한철 홍역처럼 앓다가
사월이 아쉽게도 다 갈 때
나도 함께 그대와
소리 소문도 없이 땅으로 입적하였으면
야화
한겨울 때 아니게 피어난
꽃들을 본다
조용한 울음으로 영하의 밤을 녹이는
서러운 분노의 꽃들
찬 기운 도는 한 시대의 야만과 무지의 허공
애무하는 情念의 야화
꽃들의 붉은 혀가 가슴에 와 닿을 때마다
추위로 굳어진 몸 풀려 뜨겁게 달아오른다
한겨울 때 아니게 피어나
흐느끼는, 절규하는 꽃들이
소리 없는 함성을 듣는다
거리와 광장을 적시고 마침내
국경을 넘어 번지는 꽃들의 눈물!
한겨울 때 아니게 피어난
수만 송이의 꽃 붉은 손 뻗어
내 오랜 방관의,
생의 얼룩을 닦고 문질러댄다
저녁 6시
저녁이 오면 도시는 냄새의 감옥이 된다
인사동이나 청진동, 충무로, 신림동,
청량리, 영등포 역전이나 신촌 뒷골목
저녁의 통로를 걸어가보라
떼지어 몰려오고 떼지어 몰려가는
냄새의 폭주족
그들의 성정 몹시 사나워서
날선 입과 손톱으로
행인의 얼굴 할퀴고 공복을 차고
목덜미 물었다 뱉는다
냄새는 홀로 있을 때 은근하여
향기도 맛도 그윽해지는 것을,
냄새가 냄새를 만나 집단으로 몰려다니다보면
때로 치명적인 독
저녁 6시, 나는 마비된 감각으로
냄새의 숲 사이 비틀비틀 걸어간다
장독대
이제 다시 그처럼 깨끗한 기도 만날 수 없으리
장독대 위 정한수 담긴 흰대접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둠은 도둑걸음으로 졸졸졸 고여 오다가
흰빛에 닿으면 화들짝 놀라 내빼고는 하였다
어머니는 두 볼에 홍조 띄우고
두 손 가지런히 모아
천지신명께 일구월심 가족의 소원 대신 빌었다
감음한 뒷산 나무들 자지러지게 잔가지를 흔들고
별꽃 서너 송이 고개 끄덕이며 더욱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런 새벽이면 어김없이 얼어붙은
비탈에 거푸 엎어져 무릎 까진 밤새 울음이 있었다
풀잎들은 잠에서 깨어 부스럭대고
바지런한 개울물 들을 깨우러 가고 있었다
촘촘하게 짜여진 어둠의 천 오래 입은 낡은 옷 되어
툭툭 실밥이 터질 때 야행에 지친 파리한 달빛
맨발로 걸어 들어와 벌컥벌컥 마셨다
광석들 가로지르는 서울행 기차 목 쉰 기적이
달아오른 몸 담궈 오기도 하였고 밤나무의,
그 중 실한 가지가 손 뻗어오기도 했으나
정한수는 줄지 않았다
장독대. 내 생의 뒤뜰에 놓여 있는,
생활이 타서 갈증으로 목이 마를 때
흰빛 내밀어 권하시는,
내 사는 동안 내내 위안이고 지혜이신 어른이시여,
해설/천양희(시인)
힘센 고집과 굵은 힘줄이 시펄시펄 살아 있는 그의 시편들은
댐을 박차고 나온 상류처럼 격동으로 굽이치고 있다.
마음의 골방에 자존의 족보책 한 권 구겨 넣고 떠도는
그의 시에 대한 고집과 불통은 수심(水深)보다 깊다.
그 깊음이 ‘횃불이 자신의 시로 인계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한 시인의 개벽적 연대기를 쓰게 하고 있다.
절망과 자부라는 상반된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그도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자신의 진액은 그러므로 울음이 아니라 식량이며 자신의 절망은
예술가가 아니라 애술가라고 자각하는 몇 안 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탁월한 인식력과 예지력으로 현실을 꿰뚫고 있는 그의 시편들은
그의 놀라운 발견으로 「푸른 고집」이란 절창을 부르고 있다.
물에는 뿌리가 없으니 고통도 없을 것이라는 이 한 편의
발견만으로도 한 시인의 고유한 세계를 적을 수 있다.
그의 발견은 현재를 발견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재로 하여금
다가오는 시간과 만나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
그것이 그의 시의 푸른 고집이며 그가 품은 시의 뜨거운 불이다.
<푸른 고집>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시인에게 ‘그의 시는
곧 그다’라고 말하고 싶다.
먼길
이 세상 가장 먼 길
내가 내게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걸어왔다
내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동안
몸 속 유숙하는 그 많은,
허황된 것들로
때로 황홀했고 때로 괴로웠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내게로 돌아가는 날
길의 초입에 서서 나는 또,
태어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새처럼
분홍빛 설레임과 푸른 두려움으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괜시리
주먹 폈다 쥐었다 하고 있을 것이다
술이나 빚어 볼거나
올 가을엔 만사 젖히고
내 고향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에나 가서
철없던 유년
소풍 갔다가 보물찾기로 받은 호루라기
종일 불다가 잃은 뒤로
빛과 색 더욱 무성해진 풀밭에
빈 항아리로 누워
산그늘 덮고 한 달포 자다 깨다 하면서
저 잘난 세월에 농이나 걸까
그러다 여우비 내리걸랑
고스란히 아껴 두었다
한량 같은 구름 몇, 살오른 별 몇
동동, 동치미처럼 띄워 놓고
산달 앞둔 여자 둥근 배 같은 달도
푹 담가 띄우고
떼로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삼태기로 쓸어 담아
꾹꾹 눌러 쟁이고
오명 가명 수박씨인 냥 툭툭 내뱉는
누룩내 나는 사투리도 몇 함께 절여서
도수 높은 술이나 빚어볼거나
명리에 밝은 샌님들 불러들여
인사불성 될 때까지 대작할거나
밥알
갓 지어 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좋겠다, 마량에 가면
몰래 숨겨놓은 애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포구에 가서
한 석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나 누워
발가락 장단에 철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가 구수한, 갯벌 같은 여자와
옆구리 간지럼이나 실컷 태우다 왔으면...
사람들의 눈총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조석으로 부두에 나가
낚싯대는 시늉으로나 던져두고
옥빛 바다에 시든 배추 같은 삶을 절이고 절이다가
그것도 그만 신물이 나면
통통배 얻어 타고 휭, 먼 바다 돌고 왔으면
감쪽같이 비밀 주머니 하나 꿰차고 와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남의 뜻도 모르는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냈으면...
주름진 거울
거울 속 굵게 팬 주름들 곁,
갓 태어난 잔주름들
어느새 일가를 이루었구나
저 굴곡과 요철은
시간의 밀물과 썰물이 만든 것
주름 문장을 읽는다
주름 속에는 눈 내리는 마을이 있고
눈에 거듭 밟히는
윤곽 흐릿한 얼굴이 있고
만지면 촉촉이
손에 습기가 배는 풍금 소리가 있다.
이마에서 발원한 주름 물결
번져서 온몸을 덮으리라
위대한 식사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마당가 매케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없이
뛰어드는 밤새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 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수직에 대하여
수평은 수직이 만든 것이다
산의 수직 하늘의 수평을
해저의 수직 바다의 수평을
기둥의 수직 천장의 수평을
언덕의 수직 강물의 수평을
꽃대의 수직 꽃의 수평을
동이에 가득 담긴 물
이고 가는 그대의,
출렁출렁 넘칠 듯 아슬아슬한
사랑의 수평도
마음 속 벼랑이 이룬 것이다
수직의 고독이 없다면
수평의 고요도 없을 것이다
나는 셔틀이라네
글을쓰고있어요
뿌쿠형이쓰래요
나는셔틀이라네
뿌쿠형이시키면
뭐든해야한다내
나는셔틀이라네
스타형이시키면
뭐든해야한다네
나는셔틀이라네
셩누나가시키면
뭐든해야한다네
나는셔틀이라네
약속님이시키면
뭐든해야한다네
나는셔틀이라네
츄잉에서시키면
뭐든해야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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