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命의 詩 / 문정희

 

 

시간이란 한낱 美文
그 부끄러움 위에
떠돌게 하소서

 

달빛 꾀어내는 풀피리에도
몸이 달아
냄새와 능멸로 살아나는
배암이게 하소서

 

천하고 무지한 신명들려
햇빛이 직선으로 쏟아지는
거친 돌밭에 입으로는 말고
몸으로만 몸으로만 소리치게 하소서
생각이란 생각은 죄다 벗고
무서운 비밀을 본 者처럼
두 눈도 없이 시간의 황홀한 江가에 내내
비늘로 떠돌게 하소서

 

 

 

 

**********************************************

 

시인은 이제 기꺼이 욕정에 온몸을 내맡기길 소망한다.

너와 내가 하나되는 순간을 염원하는 그녀에게 더 이상

이성과 욕망은 분리되지 않는다.

타인을 향하여 기꺼이 홍등을 내거는 그녀는 곧 자연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본질적인 생명의 분출,

에로스적 욕망을 허용한다.

‘냄새와 능멸로 살아나는 배암’이 된다는 것.

그것은 문명사에서 원죄로까지 정죄되었던 원초적 욕망과

본능적 충동의 부끄러움과 능멸스러움을 승인하면서

오히려 ‘천하고 무지한 신명’들기를 기꺼이 자처하는

그러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파 시인 서정주의 영상을 떠올린다.

꽃다님같은 뱀의 황홀한 매혹과 그 뒤를 쫓는 가쁜

숨결의 디오니소스적 도취, 이미 천상적 질서를 거역한

악한 존재인 ‘배암’이 내뿜는 그 강렬한 생(生)의 충동과

관능을 말이다.

시인 역시 스승 서정주의 강렬한 호흡에 감염되었나 보다.

‘달빛 꾀어내는 풀피리에도 몸이 달아’오르는 에로스적

영상은 이제껏 문명사회를 이끌었던 현실 원칙, 이성적

사유가 지배하는 태양의 세계 저편에 자리한다.

타자성으로, 비정상으로, 비도덕의 이름으로 능멸되어

왔던 들을 되살리기, 그 시도는 언제나 달빛의 영상

아래 존재한다.

‘흐르는 모래 위의/ 달빛이 감기어/ 끈끈한 비밀들이/

비비는 소리’(<不眠>)에서처럼 언제나 분출되기만을

애타게 갈망하면서.

달에 관계되어 있는 신화와 종교 안에서 우리는 문명에

의해 억압되어 왔던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남성 원칙인 태양은 낮, 즉 의식과 노동, 명확한 이해와

분별인 로고스(logos) 위에 군림한다.

그러나 신화 속에서 달은 사랑의 여신이며, 어떻게

설명없는 방법으로 인간들이 저항할 수 없이

끌리게 또는 밀어내게 만드는, 인간적인 것을 초월하는

신비한 에로스(eros)이다.

에로스는 달빛의 영상 아래 존재하는 충동과 무의식,

비합리성, 그리고 원초적 본능과 같은 모든 여성적

원칙포괄한다.

이제 시인은 어둠과 저주와 악(惡)과 무의식의 화신,

‘배암’이 되어 입으로는 말고 ‘몸으로만 몸으로만

소리치’고자 한다.

‘생각이란 생각은 죄다 벗고’, ‘두 눈도 없이’ 온 몸으로

소리치기란 무엇을 갈망하는 몸부림인가.

로고스의 명징한 인식의 공간에서 언어(言語)란 이성적

사유, 로고스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었던가.

또한 근대문명의 토대가 된 ‘차이의 시선’은 강렬한

이성의 태양빛에 근거한 눈(目)에의 신념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제 시인은 입을 닫아 로고스의 언어를 폐쇄

하고 두 눈도 없이 온몸으로 소리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성중심주의적 사유체계 내에서 ‘정신’과 대립적인

의미에서‘몸’, 그 방탕하고 더럽고 자기 파괴적인

쇠퇴와 갈등의 기호. 그러나 시인은 ‘몸으로만 소리치기’

를 통해 달빛에 드리워진 그 모든 열등함과 억압의

기호들을 당당히 표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달빛과 공모하는 에로스적 욕망이 항상 자기파괴의

위험한 기호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 마음문에 홍등걸기 / 문정희論  -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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