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인지 시5

 

도토리 / 주영순

 

일흔 살 청년은 마음이 허하다

산바람과 친구하고

나무와 놀이한다

고집은 늘어나고

대화는 부족해

나날이 재미없다

살리지 못한 취미

인터넷바둑과 씨름한다

 

남아도는 시간

도토리 주우러 간다

배낭이 터진다고 떠들어대도

속절없이 담는다

 

데굴데굴 도토리

꿈틀꿈틀 흰 벌레

그 수만큼

아내 주름 깊어진다

 

 

 

절식 / 주영순

 

텅 빈 마음속

버석거리는 핏빛으로 타들어간다

 

식탐만 늘더니

망가지는 곳도 는다

아직은 꽃잎 갔지

아직은 꽃향기 나겠지

 

줄어든 태양 빛에 감량한 체중

울긋불긋 화장하더니

곯은 배 웅크리고 가버린다

 

주름져 금 간 피부

하얗게 빨갛게 세월 풀어

날려보낸다

 

 

 

억새 / 주영순

 

오 남매 내미는 손 외면하고

항아리에 꿍쳐 둔 돈

남몰래 날갯짓하더니

높지막 올랐다

 

돈, 돈, 돈

가족을 조롱했다

자식을 차별했다

도둑으로 몰았다

 

쪽머리 잘라 풀어헤치고

억새처럼 체머리 흔든다

꽃 한 번 피지 못하고

부서진 기억 흩날리고 있다

 

누런 이 듬성듬성 드러내고

돈이 비웃는 할머니의 우주

요양원 침대 한 칸이다

 

 

 

예쁜 집 / 주영순

 

밤새 귀뚜리가 울어댑니다

그곳도 밤새 우는 귀뚜리가 있나요

우리가 헤어진 계절, 가을도 있나요

 

새하얀 새옷으로 갈아입고

못 다 이룬 꿈 일구고 계시나요

지독했던 고통 사라지고 평안하신가요

아무도 알 수 없는 그곳은

정말 아름다운 곳인가요

 

금빛 같은 긴 강을 건너

은빛 같은 은하수에서

예쁜 집을 지으셨나요

 

국화꽃 속 미소는

달빛 흐르고

별빛 내려

시린 가슴에 애상의 등불 밝힙니다

 

 

 

구절초 / 주영순

 

햇살 살포시 앉은 영평사

청아한 목탁소리

똑똑똑 똑또르르

바람의 애절한 속삭임에

멍든 꽃봉오리

 

수많은 합장이

구절초 꽃잎마다

똑똑똑 똑또르르

 

꾸역꾸역 몰려오는 중생을

백설 같은 미소로 어루만진다

향긋한 꽃잎 한잔 취하게 한다

 

구절초 잔치가

똑똑똑 또르르

꽃잎 사이마다 햇살

온 산에 번진다

 

 

 

시화 시1

 

 

사진찍기 / 주영순

 

안개꽃 찾아 달려간 솔밭에는

별들만 깜빡깜빡

초가을 냉기 서리는 임한리

어둠을 밀어내기 힘든지

새벽이 꾸물거린다

 

긴 여명

순간 터지는 빛

구부러진 가지마다

방싯거리는 햇살

뒤집어 찍고 돌아서 찍고

산고의 울부짖음

 

황금 물결이 잔잔한 원정리

연기가 넘실거린다

수백 년 살았다는 느티나무에

빛의 움직임이 요란하다

해 그림자를 찾아 찰칵찰칵

황금 벼와 청동 나무가 고개를 든다

산다는 건 신비롭고 거룩하다

출처 : 짓거리시인의 시세상
글쓴이 : 짓거리 시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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