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한 그릇

 

글/ 정 혁

 

 

언젠가 아는 분과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다. 마침 중복인데 보신탕을 좋아하느냐고 하였더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라고 한다. 평소에 잘 한다는 보신탕집들을 생각하다가 종로에 있는 집으로 함께 하였다. 미리 예약을 하면서 가장 맛있는 부위를 준비해 놓으라고 부탁을 하고 출발하여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였다. 그런데도 중복 날 이어서 그런지 식당 안에는 1, 2층 홀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예약이고 뭐고 손님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자리를 잡을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입장 번호표를 받아들고 땀을 흘리며 현관에서 10여 분 간 기다리다가 겨우 자리가 나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주인이 미안하다고 하며 맛있는 부위를 내어와 그런 대로 만족하며 식사를 하게 되었다. 초대한 분을 모시고 간 자리에서 식사마저 맛이 없었다면 낭패를 당할 번하였는데 비록 인사치레라 할지라도 음식이 맛있다고 하니 체면은 세운 셈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여름 복더위 중에는 더위를 이기고 몸보신한다는 이유로 보양식을 많이 먹는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보신탕과 삼계탕이다. 그런데 늘 이 보신탕이 문제다. 소위 동물애호가들이 많은 서양 사람들 중에는 이 개고기를 즐겨먹는 한국인들을 악하고 미개한 종족들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저들 중에는 그러한 한국인들이 야만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우리의 문화 관습이 틀리고 음식문화가 다르며 풍속이 다른 것을.

 

사실 먹는 것 가지고 따지자면 우리가 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그렇지 달팽이를 음식이라고 먹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서양인들은 아니지만 곰 발바닥이나 상어지느러미, 원숭이 골이나 눈알을 요리해 먹는 종족들이 과연 사람이라면 할 짓인가? 그런데 오히려 점잖은 동양예의지국 사람들을 추악한 야만인이라고 하니 가당치도 않은 어불성설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내친김에 억지라도 궤변이면 궤변이라고 할 내 주장을 한번 말하려고 한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어도 일찍이 <추악한 미국인> 이라는 책은 보았으나 그만 때쯤 추악한 한국인이라는 책은 있지도 않았다. 다만 1964년인가, 김진만의 <아글리 코리안>이라는 제목이 붙은 수필집(?) 같은 것이 탐구당에서 탐구신서로 발간되기는 하였으나 짤막한 글의 제목을 책제목으로 붙여 논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근래에 들어 <어글리 코리언>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이건 단지 <어글리 아메리칸>에 빗댄 글과 말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야만인이라는 비하의 말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인의예지를 중시하는 고등문화민족이다. 배달민족이요 백의민족이다. 그래서 오히려 옛날부터 우리 민족 아닌 종족들을 보고 오랑캐라고 부르지 안했던가? 진화론적으로 보면 인류의 진화가 가장 빠르게 되고 민족의 역사도 짧지 않은 우리나라이고 한민족이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털북숭이가 없다. 서양 사람들이 오히려 원숭이나 고릴라처럼 털북숭이가 많은 것을 보면 그만큼 진화가 덜된 인종이 서양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종족이 더 야만에 가까운가? 억지를 또 부려보자. 우리 옛 말에도 과부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말이 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과 같다. 동물애호가들이 많은 서양 사람들은 그야말로 동물(야만)에 가까우니까 동물을 애호한다. 그러면서도 가장 약육강식의 지배논리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테리비전에 자주 나오는 동물의 세계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약한 동물들은 강한 동물들에게 잔인하게 잡혀 먹히는 비정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해설가들은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생명이 소멸되고 순환되는 자연의 역사라고 설명한다. 이치에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자의 논리에 다름 아니고 힘 있는 나라가 약소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태도이다. 야만인이 얼마나 힘이 센가? 힘으로 하자면 사람이 고릴라나 오랑우탕을 당할 재간이 없다. 왜 그런가? 힘이 셀뿐만 아니라 인정사정도 없으니까. 인정은 사람(人)에게만 있는 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동물도 사랑할 줄 아는 것이다. 애완동물이니까 먹지 말라는 말도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애완동물이 어디 개에게만 국한된 시대인가?

 

애완동물로 취급되는 동물들을 보면 돼지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악어나 뱀도 있듯이 그 종류가 실로 다양하다. 그리고 애완동물이던 아니던 간에 사람들이 먹는 종류 역시 다양하다. 따라서 나라마다 전통과 인습이 제 각기 다른 음식문화를 가지고 무조건 시비를 걸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한 때, 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맞춰 한국정부에서는 외국의 그런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서인지 보신탕집이나 뱀탕집들을 시내에서 몰아내고 영업을 못하게 제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나는 검찰청과 법원청사의 부근에 있는 서초동의 유명하다는 어느 보신탕집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음식점 주인의 말에 의하면 그런 행정조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정 조치를 내린 국무위원들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은 개의치 않고 개고기 집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고관대작의 잘 잘못을 가리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역설적으로 그만큼 보신탕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애호음식이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중복 하루 전날 우리나라의 동물애호가들도 피켓을 들고 동물을 사랑하자는 캠페인(시위?)을 벌렸다는 소식인 데도 많은 사람들이 보신탕집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고 본다. 또 한 가지 눈에 띄었던 것은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보신탕집 드나드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는데 손님들 중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었으며 개중에는 처녀들도 곧잘 들어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보신탕의 매력인지 복날의 위력인지를 다시 느꼈던 하루였다.

 

글을 쓰다 보니 어쩌다가 보신탕론으로 빠져 그야말로 보신탕 맛과 글맛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위의 주장들은 나의 억지스런 주장을 한번 한 것에 불과 하니까 혹시 동물애호가들이나 보신탕을 혐오하고 보신탕을 먹는 사람마저 야만인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널리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원래 이 글을 쓰고자 했던 뜻은 보신탕을 먹을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서이다. 나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아버지는 보신탕을 무척이나 좋아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잘 아는 아버지의 친구와 후배들은 매년 복 때가되면 아예 개 한 마리를 요리해 놓고 아버지를 초대하곤 하였다. 그런 행사를 여러 번 보았다.

 

아버지는 슬하의 8남매를 키우시느라고 많은 고생을 하셨다. 내가 넷째지만 장남이어서 그런지 이런 저런 의논은 늘 나에게 해 오셨다. 군대를 마치고 대학 재학시절에 결혼을 한 후로도 형편상 아버지를 모시지는 못했지만 가까이 살고 계시는 부모님 댁을 오며가며 찾아뵙곤 하였다. 하루는 부모님 댁을 들렀더니 아버지가 아직 점심을 들지 않았다고 하셨다.

 

마침 한 여름이고 해서 보신탕을 사드릴 생각으로 택시를 타고 그 당시 내가 살던 인천에서는 제일 잘 한다는 깜상네 라는 별명의 보신탕집으로 모시고 같다. 그리고 보신탕 한 그릇씩을 맛있게 비우고 나온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연년생인 딸 둘이 있었고 직장 초년생이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였지만 내 딴에는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 가며 아버지께 보신탕을 한번 접한다는 효심이 발동하여 택시로 모시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것이 그렇게 후회스러운 일이 되는 줄을 누가 알았으랴. 그 후에 나이가 들고 이런 저런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신탕집을 여러 차례 드나들게 되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보신탕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드나들다 보니 보신탕은 그야 말로 탕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칼 판 위에 수육이라는 고기 요리도 있고 전골도 있고 나중에는 거기에 밥을 볶아 먹는 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라고 왜 그런 것이 없었겠는가? 그래서인지 보신탕집에 들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은 보신탕 한 그릇이 전부인양 생각했던 무지가 빚은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과 불효에 가슴이 메어질 때가 많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나도 보신탕 요리를 잘 몰라 그냥 뚝배기 탕 만 있는 줄 알았고, 그때 주머니 사정도 구차하던 시절이었으나 그까짓 탕 값이야 얼마나 하랴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칼판 위에 얹어 내오는 수육이나 전골요리를 알았다면 아예 아버지를 보신탕집에 모시고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였다.

 

아버지는 젊으셨을 때 자장면을 여덟 그릇이나 잡수실 정도로 대식가였다고 한다. 또한 미식가이기도 하셨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결혼까지 한 큰 아들이 모처럼 사 드렸던 보신탕 뚝배기 한 그릇을 비우시고서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갑작 스러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내 딴에는 효도한답시고 사 들였던 보신탕 한 그릇, 그것을 잡수시고 "맛있게 잘 먹었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생각을 하면 아버지 살아 계실 때에 그야말로 맛있는 보신탕 요리 한번 제대로 사드리지 못했던 불효가 죄송스러워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출처 : 박샘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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