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태이야기

 정채봉

  

꽃뫼 마을에 집을 사서 들어서자 이 녀석이 먼저 소리를 내었다. 털이 하얀 스피츠인데 제 판잣집에 틀혀박혀 눈에 파란 빛이 일렁일만큼 죽어라 하고 짖어댔다.
 어떻게 좀 사귀어 볼까 하고 빵을 사 들고 간 아이들한테 으르렁거려서 혼비백산하게 만들었고, 이튿날이 되어 목이 쉬어도 녀석은 짖기를 멈추지 않았다. 전 주인이 이사가면서 물려준 개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괜히 얻었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참다못해 집사람이 "저 빌어먹을 놈의 개새끼, 옆집 할머니네에나 주어 버립시다." 하는 것을  "쉬 달구어지지 않는 조선 솥이 오래가지 않던가요? 두고 보시오. 정 들이면 또 그만큼 잘 따를 것이오." 하고 말렸다.
 과연 녀석은 차차로 낯이 익어지자 처음 사납게 짖던 맹렬만큼 우리 식구들하고 바짝 가까워졌다. 이름도 원래의 '해피'에서 우리 아이들의 돌림자인 '태'자를 써서 '개태'로 바꿔졌다.
 그러자 바깥 외출이 잦은 녀석을 아이들이 "개태야! 개태야!"하고 찾으러 다니는 통에 이웃에서 우리 집을 가르켜 '개태네 집'이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일요일에는 이 마을에 외판 사원들이 들이닥쳐 이집 저집의 개들을 짖기고 다녔다.
 그중에 한 사람이 우리 골목을 들어서면서 옆집 할머니한테 "저 집은 누구네 집입니까?"하고 물었던 모양. 그러자 그 할머니가 무심히 "개내테 집이라우."하는 말을 듣고 이 사람이 대문을 두들기면서 부르는 것이었다.
 "개태 선생님, 개태 선생님 계십니까!"하고.
 물론 녀석이 컹컹 대답을 하였는데 우리는 여간 쑥스럽지가 않았다.
이 녀석한테 얽힌 에피소드는 이외에도 많다. 아침 출근할 때 밖에서 놀고 있는 녀석한테 들킨 날이면 온 동네 개들을 다 데리고 전철역까지 배웅 나오는 통에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지를 않나, 족발집에서 소주를 마신 김에 생각이 나서 한두 번 먹고 남은 것을 비닐 봉지에 담아 들고 들어왔더니 밤이 늦을 때는 꼭꼭 전철역으로 내 마중을 나오질 않나.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해 가니 아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 나오면서 말했다.
 "아빠, 개태가 잡혀갔나 봐요."
 "개태가 잡혀가다니, 누구한테 잡혀가?"
 그때서야 나는 녀석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았다. 집사람의 설명으로는 아침 나절에 나간 후로 들어오지를 않는다고 했다.
 점심 무렵에 개장수의 ""개 파세요, 개 파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때 어찌 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정 들인 것을 잃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여간 마음이 섧지 않다. 녀석의 빈집을 보는 것도 괴롭고 이웃집 개가 짖는 것조차도 가슴아팠다. 녀석은 집을 나간지 나흘째가 되어도 종무소식이었다.
 그 주 일요일에 나는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사제관에 들러 신부님을 만나고 있었다. 집 나간 개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아이들이 성모님께 전에 없이 무주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 녀석 때문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신부님의 얼굴이 환해지며 "기쁜 소식입닏."하면서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집사람의 숨가쁜 음성이었다.
 "개태가 돌아왔어요. 무슨 끈을 끊고 왔는지 목에 털이 벗겨지고 상처가 크게 났어요."


 꽃뫼 마을에 산지 3년 만에 우리도 부득이 아파트로 이사를 나오게 되었다. 집이 팔리자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녀석이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뾰족 수가 없었다. 전 주인처럼 집을 사서오는 분들께 부탁을 하고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며 이삿짐 차에 올랐다. 그러나 녀석은 아이들이 사다 준 소시지에 정신이 팔려 떠나는 우리를 못 보았다.

 그날은 외국으로 떠나는 친구의 송별연 관계로 밤길이 늦었다.전철을 타고 전에 살던 화서역을 지나면서 무심히 창 밖을 보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수은등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하얀 것. 그렇다. 녀석인지도 모른다.
 나는 수원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되짚어 나왔다. 역의 출구를 나서는데 쏜살같이 달려와서 엉겨 붙는 것은 녀석이었다.
 안면 있는 역원이 곁에서 말했다.
 "개가 의리없는 사람보다도 낫습니다. 저놈이 밤마다 나와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우리들끼리 그런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뒤부터 나는 한 며칠동안 집에 가기 전에 먼저 녀석의 군것질을 준비해 가서 녀석하고 만나곤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가 언제까지고 이렇게 녀석한테 꼭꼭 들를 수가 없는 일 아닌가. 이것은 녀석을 행복케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주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날 이후 나는 녀석한테로의 발걸음을 뚝 끊었다.
 아, 매정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이 에고여!

 

 

출처 : 박종국의 "배꾸마당이야기"
글쓴이 : 박종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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