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의 구두
장례식장의 구두
배 종 팔
구두를 본다. 그것도 장례식장에서 보는 구두다. 영정 사진 옆에 가지런히 놓인 새 구두가 의아해 향을 피우다 슬쩍 보고 상주와 절을 끝내고 또 한 번 본다. 산악회에서 만나 형님이라 부르며 친해진 지인인데 한동안 안 보이더니 저렇게 영정 사진으로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왜 하필이면 걸맞지 않게 영정 사진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걸까. 그의 이른 죽음이 슬퍼 가슴이 아파 오는데도 엉뚱하게 내 눈은 자꾸 구두 언저리에 머문다.
장례식장 입구에 수많은 구두들이 있다. 어지러이 늘려 있고 엎어져 있지만 방금 벗어 놓거나 곧 신을 거란 기대로 생명의 기운이 꿈틀댄다. 서로 어깨를 걸친 채 세상을 얘기하고 그간의 안부를 묻고 있다. 식장 한쪽의 화투짝처럼 배를 뒤집고 살아온 길들을 드러내 놓고 있다. 그들의 일상이 구두 속에서 나와 조잘조잘 얘기를 풀어내는 것 같다.
주인이 죽으면 구두도 덩달아 죽는 법인데 그의 빈 구두는 되레 소원했던 사람들을 불러 상갓집을 시끌벅적한 생의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하지만 정작 그 구두는 한낱 유품일 뿐 생명의 온기라곤 없다.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는 장례식장에서 한쪽의 구두들은 생명의 기운을 뿜어대는데 한쪽은 정갈하게 놓여 있지만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오죽했으면 저토록 귀를 쫑긋 열고 문상객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상주가 건넨 탕국을 먹다 입구에 놓인 한 문상객의 구두를 본다. 급하게 벗어 놓았는지 두 밑창이 천장을 보고 있다.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이 꽤나 가슴에 사무쳤나 보다. 밑창에 굵은 금이 무수히 나 있고 곳곳에 얼룩이 거무스레 엉켜 있다. 험하고 가파른 삶의 길들이 야금야금 뒷굽을 갉아 먹었으리라. 세상의 가시에 찢긴 상처가 너덜댄다. 거친 길을 오래 걷다 보면 몸속의 상처도 감출 도리가 없나 보다. 그를 삶의 막바지로 몰아세운 길들은 어떤 길이었을까.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뜀박질도 했을 테고, 고갯길 너른 바위에 주저앉아 느슨한 끈을 조이며 숨도 골랐을 것이다. 그를 찾아 식장 안을 슬쩍 둘러본다.
물끄러미 망자의 구두를 또 쳐다본다. 새 구두가 불빛을 받아 서러울 정도로 밝다. 구두 위에서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달처럼 떠 있다. 그와의 인연이 구두코에 부서지는 저 형광 불빛처럼 허망하게 끝이 났다. 인연의 끝을 종잡을 수 있다면 좀 더 생전의 모습을 눈에 새기고, 좀 더 따뜻한 말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공부를 원껏 못해서 한이 된다고 언젠가 말했다. 펜이나 책이라면 모를까 유족들이 새 구두를 영전에 둔 의도가 뭘까, 문상하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소음과 온기로 가득한 문상객의 방과 침묵과 냉기가 착 가라앉는 상주의 방 사이의 벽이 손톱만큼 얇다. 그 벽 위의 천장에 끈끈이가 뫼비우스의 띠 모양으로 걸려 있다. 불빛을 쫓아 질주하다 허망하게 죽은 나방 주위로 하루살이들이 빙빙 돌고 있다. 미동도 않는 죽은 나방과 날개를 퍼덕이는 하루살이의 거리가 채 한 치도 되지 않는다. 상주 방의 침울과 문상객 방의 활기를 압축해 놓은 듯한 저 끈끈이는 하필이면 두 방의 경계에 매달려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저 뫼비우스 띠처럼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닌 순환의 고리라는 걸 말하고 있는 걸까. 불과 한두 세대 전만 해도, 사람이 죽으면 그의 윗옷을 지붕에 던져 혼을 달랬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유족들은 장례식장에서 새 구두로 망자의 혼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그리다 만 그림을, 고치 속에 접어둔 날개를, 저 구두를 신고 피안의 세계의 문턱을 넘으면 맘껏 날개를 펴고, 눈꽃을 그려 넣을 수 있을까.
장례식장에서 나오며 접수대에 있는 망자의 조카로 보이는 청년에게 영정 사진 옆에 왜 새 구두가 놓여 있는지 물었다. 그 새 구두는 첫째 아들이 올려놓았다고 했다. 망자의 직업이 택시 기사였는데 박한 수입으로 사 남매 키우느라 구두 뒷굽만 갈며 새 구두 한 번 사 신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첫 월급으로 산 구두를 아끼느라 제대로 신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구두를 흐린 눈으로 꽤 오래 쳐다봤다.
-2022 선수필 여름호
배종팔 수필가
2007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수필집 『명품 가방과 칼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