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소리]'기니미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나제통문’ 본래 명칭
[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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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군과 진안군 지역 내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친일 잔재로는 무주 나제통문과 무주 설천 충혼비, 장수 경찰서 관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지어졌거나 일본 양식으로 이뤄져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기 위한 교육의 장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친일 잔재들이다.
무주 나제통문(羅濟通門)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산85
무주군 설천면에 소재한 나제통문(羅濟通門)은 1925년 무주의 금광개발과 농, 임산물의 신속한 운반을 위해 김천과 거창을 잇는 신작로 개발을 위해 축조한 인공터널이다.
한 때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를 관통하는 석굴(石窟) 형태의 문(門)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무주군청지인 '적성지(赤城志)'의 기록을 통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본래 나제통문의 명칭은 ‘기니미굴’이었지만 1963년 김남관 대령 주도 하에 무주구천동 3경 관광지 개발을 위해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나제통문을 사이에 두고 무풍면과 설천면 사람들이 무주읍과 대전을 오가는 생활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기 위한 교육 테마로 이용 가치가 매우 높다.
무주 설천 충혼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998-2
무주 설천 충혼비는 한국 전쟁 당시 이 지역에 공비들이 자주 출몰한 가운데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무주군 청소년들이 힘을 모아 자치적인 훈련을 쌓아 대적했다.
이때 전사한 3인의 숭고하고 거룩한 뜻을 오래도록 새기고 넋을 추모하기 위해 비를 건립하였다. 현재는 영령들의 거룩한 뜻이 후대에 전파될 수 있도록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의 양식이 일본식 충혼비의 양식을 취하고 있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친일 잔재 유형물로 볼 수 있다.
장수경찰서 관사(官舍)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 636-5
장수경찰서 관사는 1934년에 지어진 건물로 중복도를 통해 각 실로 연결되는 일본식 가옥의 평면 형식을 지닌다.
전면부 외벽은 시멘트와 모르타르로 마감했고 측면 일부는 목재 널판을 사용하는 등 서양식 건축 양식과 일본식 건축 양식의 특징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2005년 1월 1일 등록문화재 제216호로 지정됐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전북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