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멸치똥/안이숲
샤인**
2021. 8. 18. 16:44
멸치똥
안이숲
멸치 똥을 깐다
변비 앓은 채로 죽어 할 이야기가 막힌
삶보다 긴 죽음이 달라붙은 멸치를 염습하면
방부제 없이
잘 건조된 완벽한 미라 한 구
바다의 비밀을 까발라줄까 삶은 쓰고
생땀보다 짜다는 걸 미리 알려줄까, 까맣게 윤기나는 멸치똥
죽은 바다와
살아있는 멸치의 꼬리지느러미에 새긴
섬세한 증언
까맣게 속 탄 말들
뜬 눈으로 말라 우북우북 쌓인다
오동나무를 흉내낸 종이관 속에 오래 들어 있다가
사람들에게 팔려온
누군가의 입맛이 된 주검
소금기를 떠난 적이 없는
가슴을 모두 도려낸 멸치들 육수에 풍덩빠져
한때 뜨거웠던 시절을 우려낸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뼈를 남기고
객사한 미련들은 집을 떠나온 지 얼마만인가
잘 비운 주검 하나 끓이면
우러나는 파도는 더욱 진한 맛을 낸다
<2019 제19회 평사리문학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