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 꿰는 여자
구슬 꿰는 여자
김인희
이 동네에서 가장 말단 직업을 가진 여자 ,
구슬 꿰는 여자가 사는 집 앞을 지나갑니다 ,
바구니에 하나 가득 안개 빛 구슬을 담아놓고 안개 빛 실에 구슬을 꿰는 여자 ,
그 여자의 입가에 핀 새빨간 양귀비꽃 , 흰 , 분홍 , 보라 패랭이꽃 , 노란 노란 수
선화 꽃 , 보라 붓꽃…, 그녀의 미소를 해석해 준 자가 없습니다 . 그런데도 여자는
오만하기 그지없습니다 .
아 , 한 가지 빠진 꽃빛이 있네 , 그 여자만 사용하는 흰빛의 붓꽃 , 여자는 밤이
되면 드넓은 검은 캔버스에 하얀 붓꽃으로 기하도형의 암호를 적습니다 , 이것은 그
여자의 취미입니다 .
〈은유들을 생산합니다〉
여자의 가게 이름입니다 . 정말 어이없습니다 . 이건 뭐 자기가 시간을 경영하겠다
는 거잖아요 ?
오늘은 정말 여자를 찾아가 따져야할 것 같아서요 . 내가 진짜로 그 여자에게 화가
난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직업을 가졌음에도 늘 세상에서 가장 부자 같은 미소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 말이 됩니까 ? 화가 나서 아침저녁 그 집 앞을 지나다니며
계속 그 여자를 관찰합니다 .
처음 구슬이 구슬을 낳아서 그녀의 일은 어렵지 않게 이어져갔고
수많은 별들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순간이면 되었습니다 .
드넓은 밤하늘에는 환유인 줄 알았던 수많은 은유들이 푸른 눈을 뜨고
어미인 그녀가 뽑아내는 실에 매달려 있습니다 .
전혀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실은 계속 복사되어 길게 이어졌으므로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
“세상은 가루 서 말에 누룩을 넣어 부풀린 빵 같은 것”이라고
그런데 그 빵 , 다 뜯어 먹은 후에 다시 가루로 돌아가는 빵입니다 .
이제 그녀의 바구니에 남은 구슬 몇 알 없습니다 . 독자들은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그녀의 구슬바구니에는 가위도 있습니다 . 그 직업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그녀는
새로운 구슬을 꿰기 위해 그저 다 꿰어진 구슬의 줄을 가위로 끊어버릴 것입니다 .
은유를 생산하고 세상을 부풀리기 위한 그녀의 놀이는 반복될 것입니다 .
<현대시학> 7`8호